강영환 시 창작 강의 16
상징의 유형
들에 핀 꽃을 보고 반응하는 인간의 태도는 각기 다르게 마련입니다. 그 사람의 경험체계에 비추어 각기 다른 각도로 사물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꽃=여인’의 등식에 익숙해져 있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것은 비유법의 체계 속에서 언어생활이 이루어져 왔고 그런 생각은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의식을 지배해 왔으며 그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가져질 수 있는 것입니다. ‘꽃’이라고 하는 언어가 가진 의미와 실제의 꽃, 그리고 ‘여인’이라는 언어와 실제 여인이 서로 같은 것으로 간주되어 왔던 것입니다. 시인은 이런 비유법에 익숙해 있고 통상의 비유법으로부터 탈출을 도모하고저 합니다. 그것이 창작이라는 행위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비유의 창출, 새로운 상징의 발견이야말로 시를 쓰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러기에 시인은 혁명가이며 발견자이기도 합니다.
상징은 우선 언어적 상징과 문학적 상징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언어적 상징이란 언어의 특성인 대신함을 기본 속성으로 합니다. 말의 근원적 뜻에서 상징이 드러낸 <연결>의 의미를 환기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꽃>이라는 단어가 실제 꽃이라는 사물을 대신함이요, ‘여인’이 그 말이 나타내는 사람을 대신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럴 때 꽃과 여인이름으로 나타난 언어는 그 사물의 상징이 되는 것입니다. 언어적 상징이 특징으로 하는 것은 이렇게 대상에 명명 작업을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통 언어적 상징은 상징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 생활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자신의 이름을 상징이라 느끼며 살겠습니까. 그렇지만 시인은 ‘길’‘풀’‘어둠’‘창’등 언어가 가진 본래적 의미 외에 또 다른 의미를 붙여서 언어의 폭을 확장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남 다 자는 밤에도 언어와 씨름을 하며 잠 못 이루기도 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언어의 창조행위라 말할 수 있으니까요.
어느 날 내 영혼의
낮잠 터 되는
사막의 위 숲 그늘로서
파란 털의 고양이가 내 고적한
마음을 바라보면서
“이애, 너의
온갖 오뇌(懊惱), 운명을
나의 끓는 삶 같은
애(愛)에 살짝 삶아 주마.
만일에 네 마음이
우리들의 세계의
태양이 되기만 하면
기독(基督)이 되기만 하면.”
황석우 [벽모(碧毛)의 묘(描)] 전문
폐허(1920. 7)에 수록된 작품으로 위 시는 너무나 잘 알려진 작품입니다. 이 시의 주제는 사랑에 의한 영혼의 구원입니다. 이 작품에서 ‘고양이’는 긍정적 자아이며 ‘나’는 부정적 자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막’은 오뇌에 찬 현실세계를, ‘기독’은 구원을 뜻합니다. 낱말이 가진 원 뜻을 넘어서 새로운 의미를 시인이 부여하고 있습니다. 독자는 시를 통해 그런 상징의 의미를 찾아가는 즐거움이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문학적 상징이란 한 이미지의 상징적 연상은 분명하지 않고 오히려 모호하며, 작품 자체의 문맥에 의존해야 하는 점이 있습니다. 문학작품에서의 상징은 그 대상이 그런 의미를 갖기 때문에 작품에서 그렇게 사용되는 것입니다. 대상에서 <그런 의미>를 결정짓는 요인은 시인의 개성입니다. 하나의 이미지가 상징이 되기 위해서는 추상화의 과정, 정신적 조작의 중개라는 두 가지 방식을 취하여야만 합니다. 그 역할을 시인이 담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은유가 언어적 기교임에 비하여 상징은 단순한 언어적 연결은 아닙니다. 그것은 사물과 더불어 사고하는 방법이며 인간 사유가 물질세계의 대상들과 갖는 상호 반응을 그 조건으로 하고 있습니다.
나의 무지(無知)는 어제 속에 잠든 망해(亡骸)
세자아르 프랑크가 살던 사원 주변에 머물렀다.
나의 무지는 스테판 말라르메가 살던 목가(木家)에 머물렀다.
그가 태던 곰방댈 훔쳐내었다.
훔쳐낸 곰방댈 물고서
나의 하잘 것이 없는 무지는
반 고호가 다니던 가을의 근교
길바닥에 머물렀다.
그의 발바닥만한 낙엽이 흩어졌다.
어느 곳은 쌓이었다.
나의 하잘 것이 없는 무지는 장 폴 사르트르가
경영하는 연탄공장의 직공이 되었다.
파면되었다.
김종삼 [앙포르멜] 전문
이 시의 제목으로 사용되고 있는 앙포르멜(informelle)은 추상화 형식의 하나로 일정한 형식이 없는 것을 이름하는 것입니다. 이 시는 시적 화자가 지닌 무지가 예술가들의 삶과 어울리면서 자아를 찾아가는 내용이라 봅니다. 무지가 어울린 세자아르 프랑크, 스테판 말라르메, 반 고호, 장폴 사르트르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결코 무지일 수 없는 시적 화자를 빌어 예술세계의 자유분방함을 상징한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예술가들의 공간인 사원, 목가, 가을의 근교, 연탄공장들은 시적 화자인 나의 무지가 접근할 수 없는 공간으로 만들어지면서 스스로 무지로 자신을 밀어 넣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시에서 무지는 무엇을 상징하는 의미일까요. 그것은 독자들의 종합적인 판단에 맡기는 일입니다.
그러면 한 편의 시 속에 나타난 이미지가 상징인가 아닌가를 판별하는 몇 가지 방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는 상징의 유형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방편이 될 것입니다.
1) 관념과 이미지의 결합이 작품 속에서 분명하게 인지되는 경우입니다.
비 그친 오후 세시, 시민공원에 들다.
늦은 점심시간, 빵을 들고 벤치에 앉다.
나무들은 저마다 크고 작은 물방울들을 끌어안고
점심시간을 지키다. 햇살이 나뭇가지를 기웃기웃하다.
물방울 속으로 들어가다.
목련나무 앙상한 가지에 해의 물방울들 빛나다.
해들을 매달고 목련이 나를 보다.
씹던 빵을 넘기지 못하고 앉아 있다가
꿀꺽, 빵을 삼키고는 사레들다. 눈물나다.
목련이 가지를 흔들며 웃다.
몇 개의 해가 손등에 떨어지다. 빵 위에 떨어지다.
벤치 아래 웅덩이에도 떨어지다.
빵 위에 떨어진 해를 한 입 베어 물다.
웅덩이 속 목련나무 몸을 뒤틀다.
가지 속으로 투명한 속꽃이 피어나다.
꽃 핀 목련이 웅덩이 속에서 내 눈과 마주치다.
우물거리던 해를 삼키지 못하고 모두 게워내다.
목련 나무 속꽃 피는, 늦은 긴 점심시간
눈물 그렁그렁, 해가 저만치 가다.
조재영 [목련나무 속꽃 피는, 늦은 긴 점심시간] 전문
오후 늦게 점심을 때우기 위해 빵 한 조각을 들고 공원으로 올랐다. 공원은 찬란한 봄이다. 온갖 화려한 꽃이 피어나고 그 중에서 특히 화려한 목련이 시적 화자가 점심으로 빵을 먹으려 하는 그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가난이라는 언어는 사용되지 않았지만 봄이 찬란하면 할수록 그 속에서 눈물을 삼키면서 빵을 먹는 시적 화자의 궁핍한 모습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됩니다.
2) 이미지가 교묘하게 제시되어 단순히 축어적 해석으로는 상징인지 아닌지 깨달을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 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하략
위 작품은 너무나 잘 알려진 한용운님의 [님의 침묵] 앞부분입니다. 읽는 사람에 따라서 님에 대한 해석이 다르게 읽혀지는 작품입니다. 님을 조국이라고 보는 이도 있고, 자연이라고 보는 이도 있고, 불타로 보는 이도 있고, 사랑하는 님 그 자체로 보는 이도 있습니다.
3) 암시적 연상의 압력이 지나치게 커서 상징적 해석을 요구하는 경우입니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와 같은 표현이나 ‘염소는 힘이 세다’와 ‘어둠은 세상을 덮고/ 피를 부른다’와 같은 표현이 되겠습니다.
다음으로는 상징과 관련되어 나타나는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작품 속에서 상징의 위치와 기능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1) 이미저리의 근원을 경험적으로 천착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연세계, 인간의 신체, 인공세계에서 온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2) 주어진 작품 속에서 이미저리의 상태가 어떤가를 살필 수 있습니다. 실제적 경험세계의 축어적 표현, 꿈이나 환영의 세계가 비유적으로 제시된 것들입니다.
3) 이미저리가 어떻게 연상력을 획득하는 가를 살필 수 있습니다.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파악해 보면 우선 보편적 인간경험에 의해 상징을 획득한 것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계단이나 산을 오르는 행위에 대하여는 정신적 정화를 상징한다고 보는 것이며, 헤엄쳐서 물을 건너는 행위는 정신적 전환을 나타내는 것이며, 일몰은 죽음을 일출은 재생 또는 회생을 나타내는 것이라 보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인습적 상징의 예를 들 수 있습니다. 납을 금으로 변화시키는 행위는 속죄나 구원을 뜻하며, 백합이 정숙함을 장미꽃이 격정을 나타낸다는 것 등입니다. 세 번째로 내적 관계로서의 상징을 들 수 있습니다. 벽이 원시적 세계와 문명의 양분을, 푸른빛이 심미적 상상력을, 자기만족과 바다는 용기를, 강이 역사 또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나타내는 것이라 봅니다.
마지막으로 개인적 상징의 예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시인 개개인의 고유한 경험체계에 비추어 그것을 개인적으로 만들어 내어 보편적 질서 체계로 이끌어 들인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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