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 시 창작 강의 18
상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2
2. 상징적 행위에 대한 심리학적 조명-버크
언어적 측면에서 상징을 논의한 N. 프라이에 비해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시 혹은 언어학적 일체를 버크는 상징적 행위로 보고 있습니다. 그에 의하면 모든 인간의 행위는 언제나 실제적 행위만을 지향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실제적 행위라 하더라도 사람은 효용성이 아니라 비효용성을 목표로 행위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징주의 시들은 체험을 그렇게 중요시 여기지 않습니다.
울긋불긋한 고통으로 가득한 아이의 이마가
불분명한 꿈들을 꾸며 기어다니는 하얀 무리를 고통스러워 할 때,
아이의 침대 곁으로 매력적인 두 누이가 걸어온다.
반짝이는 손톱에 여린 손가락들을 하고,
그녀들은 활짝 열린 십자형 창 앞,
어지러이 핀 꽃들을 어루만지는 푸른 대기가 스며드는 곳에 아이를 앉히고,
이슬에 젖는 숱 많은 머리카락 속을
가느다란, 무섭고도 매혹적인 손가락으로 훑어 나간다.
아이는 누이들의 조심스러운 숨결을
진홍빛 수액의 향기를 길게 풍기며,
입맞춤의 욕망으로 입술에 침을 축일 때
간간이 휘파람 같은 소리에 끊어지는 숨결을.
향기로운 침묵 속에서 아이가
누이들의 검은 속눈썹이 떠는 소리를 들으며
얼얼히 무감각해 있는 동안에,
아이들이 가진 사과의 상큼한,
초록빛 물이 내 전나무 선체로 스며 들어와
푸른 포도주 얼룩과 토사물로부터
나를 씻기우고, 키와 닻을 훑어 내렸지
A·랭보의 <이를 잡는 여인들> 앞 부분.
버크는 인간의 행위를 실제적 행위와 상징적 행위로 나누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 행위 사이의 명백한 선은 구획하지는 않습니다. 물을 마시는 사람이 실제로 목이 말라서 마시는 경우와 물이 놓여 있기 때문에 목이 마르지 않더라도 마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앞의 경우를 실제적 행위라 한다면 뒤의 경우는 상징적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꽃을 사는 것은 실제적 효용성을 가질 수도 있지만 비효율성을 알면서도 사는 것입니다. 비효율적인 것을 알면서 꽃을 사는 행위가 상징적 성분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행위가 상징적 성분을 가지는 것을 버크는 <태도의 무용 dancing of an attitude>이라고 명명합니다. 여기에서 태도는 상상적 행위의 세계이며 또한 실제적 행위의 앞 단계에 속하는 세계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의 환기에 시적 효과의 최상의 부분에 놓인다는 것입니다. 행위의 태도화는 인간의 전신이 궁극적으로 포괄됨으로써 방법론적으로는 행동주의의 원리를 암시하게 됩니다. 곧 정신과 육체의 상호 관련성이 의식화되는 것이지요. 모든 상징적 행위는 표면적으로는 신체적 행위와 다르지만 내면적으로는 <정신적 갈등 mental conflict>의 이행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는 바람 속으로 걸어간다
눈물이 바람 속에서 떨어진다
언제 슬퍼한 일이 있었던가
남루한 눈물이 혼자서 걸어간다
내가 그 뒤를 따라서
다락 위에 숨겨진 보따리를 끌러
여위고 푸른 강냉이를 꺼낸다
내년 봄이 거기 숨어 있었고
나는 그것을 꾹꾹 씹어 먹는다
내게 미래란 사치에 불과하다
독자의 시 <눈물> 앞부분
이 시에서 바람, 눈물, 옥수수, 봄, 미래 등의 의미는 시인이 간직하고 있는 내면을 전면적으로 드러내 주고 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독자들은 이 시가 내포하고 있는 굶주림의 비애를 느낄 수는 있습니다. 시적 화자가 걸어가는 바람 속은 슬픈 일만 가득한 곳이고 그래서 언제 슬퍼할 겨를도 없는 곳이며 씨앗으로 숨겨둔 강냉이(옥수수)마저 먹어야 하는 극한상황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독자들은 단지 그런 상황을 읽어낼 뿐입니다.
상징적 행위란 육체에 상응하는 심리상태의 물질화, 곧 무용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갈등, 이상세계, 이데아의 세계, 관념의 세계, 아름다운 서정의 느낌 등등이 무용수에 의해 동작으로 표출되고 관객은 그 무용수의 육체에 의해 표출되는 행위를 보고 독자적으로 그와 같은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관객은 무용수가 가진 내면의 세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춤 그것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무용수의 춤이 무용수의 내면세계를 드러내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춤은 상징이 되며 결국 언어도 이러한 범주를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시인이 간직하고 있는 내면의 세계가 언어로 드러날 뿐이며 또한 그 언어는 기호에 불과하므로 시인의 생각하는 바를 전부 드러내 준다고 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상징적 성분을 나타낸다는 것은 이렇게 하나의 행위가 내포하는 심리적 상관성을 나타내는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여 심리적 갈등이나 정신상태는 상징적으로 행위와 밀접한 관련성을 띠는 것일까요.
인간의 육체적 활동이 곧 언어로 화한다는 이론을 펼치고 있는 파겟은 <제스츄어 언어론>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에 의하면 사람이 무엇인가를 손으로 잡을 때는 혀, 목구멍의 근육조직은 그의 잡는 행위를 반영한다고 봅니다. 이 때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 잡는 자세에 <소리>를 줄 때 우리는 그 소리를 언어로 수용한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행위를 할 때에도 그것을 표현하고자하는 입의 근육에 의해 이미 상징은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버크는 시인이 시를 쓰는 행위에 이 이론을 접목시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시인은 그를 깊이 괴롭히는 세계 곧 <부담 burden>에 대해서 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부담은 질병 같은 육체적 본질을 내포하며 재산을 모아 빚을 갚듯이 이 부담의 축적과 그 축적에 대한 통찰을 기초로 생에 대하여 승리하고자 합니다. 곧 시인은 자기의 약점 속에 귀속적 이점을 갖게 됨으로써 승리한다는 것이 버크의 생각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약점들, 고통들이 시인의 문체를 태어나게 하고 그 문체는 또한 시인의 육체적 질병과 은밀히 연관되는 것입니다.
모든 상징적 행위의 주제는 이러한 부담, 육체적 질병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곧 <부담>은 문체를 상징하고 문체는 부담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푸르스트는 천식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의 문체는 천식의 문체이며, T. 만은 폐결핵을 앓고 있었으므로 그의 문체는 폐결핵의 문체이며, 플로베르는 졸도하는 신체적 약점을 지니고 있으므로 그의 문체는 졸도적 문체이며, 맹인이 된 밀턴은 맹인적 문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논의의 핵심은 이러한 질병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시인이 그 질병을 둘러싸면서 지니는 구조적 힘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술행위 즉 상징적 행위는 작가의 구조적 힘이란 면에서 검토해야 하는 것입니다. 버크는 상징적이란 말을 <전략적 strategeical>이라는 말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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