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천강문학상 시부문 대상 수상작
빈 목간木簡을 읽다 외 2편
최분임
도토리 몇 알이 칭얼대는 허기를
달래기도 전 보름달이 도착했네요
채집의 종족에게 식욕은
말린 생선 비린내에도 체면을 차리지 않죠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끼니를 기다리며
생선뼈로 저녁을 불다 지친 아이들
여러 차례 달이 흘리는 육즙을 기웃거릴 때
당신을 마중 나간 길은 금세 어두워지죠
그림자로 일렁이던 당신이 영원이 되기까지
따로 내 영혼은 자라지 않았죠
주인 잃은 돌베개가 웅크린 짐승을 닮아가는 밤
당신의 팔베개에서 식은 잠이 갈비뼈 한 귀퉁이를 뒤적여
사그라진 불씨, 당신을 이룩하네요
식은 것은 뜨거웠던 것의 표정이라고 말한 게
둥근 당신이었나요, 날카로운 나였나요
토기를 빚던 손을 빌린 나무둥치가
수신인 당신의 눈 코 입을 묻네요
빗살무늬 캐던 동물 뼈는 잠의 미간처럼 생각이 많아
기다림을 새기기 적당하죠
좀처럼 속내 드러내지 않는 보름달이
당신에게 대신 전할 목간木簡을 읽기 위해
더 밝은 높이에 눈동자를 띄우네요
산길을 향해 구부정하게 걷는 달빛
반짝, 허리가 펴지네요
거미줄처럼 널린 감정들이 강물의 명경明鏡 속
뾰족한 빗살무늬로 비칠까 옹이는 지우고
새순처럼 돋아날 나를 고르고 고르죠
달빛이 나를 다 읽었다는 듯이
끊기고 번진 그림문자들
새벽빛으로 고쳐 멀어질 때까지
부활초*
푸른 피를 싹둑 자르거나 흘리지 않았는데
뿌리 뽑힌 生 한 구의 미라로 떠돈다
언제 물을 만나 代를 퍼뜨리게 될지
층을 이루고 싶은 무게 중심이 바싹 타들어간다
사막이 공처럼 말아놓은 몸을 수시로 걷어찰 때
지평선 낮은 자세를 바퀴로 장착한다
하늘의 미간에 낀 먹구름을 의심하는 동안
뿌리의 수심은 수십 리 눈물길이다
이곳에서 비가 허락하는 일이란
말라버린 꿈을 맹렬하게 불러보는 일
툭 툭 빗방울 듣던 아랫도리
비릿한 잉태의 자세로 돌아서는 순간
일제히 무덤을 걷어차는 씨앗들
싹이 꽃이 열매가 강박의 속도로 온다
길들여지지 않은 방향에서
식은 핏줄들 환하게 발견된다
부활한 맨발의 한 生이
또 한 죽음으로 달려가는 그 사이
매파媒婆 같은 찰나가 뜨겁게 서 있다
간절하지 않는 한 生은 어디에도 없다
사막의 모가지는 아직 자라는 중이다
*사막에서 자라는 식물로 가뭄 때 죽은 것처럼 지내다가 비를 맞거나 수분 공급이 되면 살아나는 놀라운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맨드라미
담벼락에 줄지어 선 입술들이
화농처럼 들뜰 때
변변한 몸뚱이도 없이 잠시
사창가 어느 골목이 펼쳐지고 있다
골목에 기댄 사연들 한 계절 반짝 피는데
평생의 핏빛을 다 쓰는지 하나같이 붉디붉다
낮은 키가 건네는 앳된 추파
너를 맞닥뜨린 시간을 마구 휘저어 놓는다
손가락질이 포함된 붉은 조명이
네 속살보다 먼저 신파 같은 웃음을 터뜨린다
삶은 때로 맨몸을 해석하고 남겨진 화대 같은 것
세상 어디에나 있을 손때 같은 것
허둥대며 돌아서는 혀에 오톨도톨 돋아난 혓바늘 무성하다
등 뒤 깔깔거리는 네 위악의 배웅이 검붉다
정수리 구불구불한 역마살이
마지막 자존심처럼 치켜든 볏의 자세
바닥나는 순간까지
꽃의 형량을 살고 있는 너
가까스로 골목의 혈색으로 팔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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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천강문학상 시 심사평
본심 심사위원 김재홍(문학평론가, 백석대학교 석좌교수)
최종심에 남은 작품은 임승환의 『홍의장군의 노래』 , 육남원의 『벽곡』 , 정와연의 『망치의 생각』 , 정연희의 『종이 한 장」 그리고 최분임의 『빈 목간을 읽다』 등 다섯 사람의 작품이었다. 심사숙고 끝에 최분임의 「빈 목간木簡을 읽다」,「맨드라미」 그리고 「부활초」를 대상으로, 그리고 임승환의 『홍의장군의 노래』를 우수상으로 선정하였다.
우선 대상을 받은 최분임의 시 『빈 목간을 읽다』를 살펴보면 시어의 표징성이 뛰어나고 시를 이끌어 가며 주제로 육박해 들어가는 집중력과 힘이 탁월하다고 보여진다.
(전략)...토기를 빚던 손을 빌린 나무둥치가/수신인 당신의 눈 코 입을 묻네요/빗살무늬 캐던 동물 뼈는 잠의 미간처럼 생각이 많아/기다림을 새기기 적당하죠/좀처럼 속내 드러내지 않는 보름달이/당신에게 대신 전할 목간木簡을 읽기 위해/더 밝은 높이에 눈동자를 띄우네요/산길을 향해 구부정하게 걷는 달빛/반짝, 허리가 펴지네요/거미줄처럼 널린 감정들이 강물의 명경明鏡속/뾰족한 빗살무늬로 비칠까 옹이는 지우고...(후략)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능수능란한 언어의 마술사적 필치로 목간의 표징성을 감각적으로 살려내고 있다.
시인의 렌즈에 잡힌 목간은 빗살무늬 토기를 빗던 어느 먼 선사의 것일 수도 있고, 당신에게 전할 나의 간절한 마음결일 수도 있다. 그러한 시적소재와 모티프를 요리조리 끌고 다니며, 언어로 요리해 내는 솜씨가 훌륭한 셰프의 칼놀림에 견주어 부족함이 없다.
또한 최분임 씨의 다른 작품인 「부활초」에서 “간절하지 않는 생은 어디에도 없다/사막의 모가지는 아직 자라는 중이다”와 같은 결구에서 보여주고 있는 생명애의 약동과 부활의 소망이라는 주제가 무리한 의도 없이 자연스럽게 맺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대상작으로서 손색이 없어 보인다. 또한 그의 다른 작품 「맨드라미」도 수작으로 꼽힌다. 대상에 대한 예리한 관찰력과 날카로운 직관력이 번득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상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 느껴져 진정성 있는 좋은 시인으로 성장해 갈 수 있다는 믿음이 들어 최분임씨의 작품을 대상작으로 선정하였다.
우수상으로 선정된 임승환의 「홍의장군의 노래」등은 특히 시적구성의 힘과 운율미 비장미가 대단히 곡진하게 표현되어 있어 진실한 감동을 이끌어내는 진정성의 미덕이 돋보였고, 나름대로 시를 완성해 내는 형상력이 우수하여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나의 이름을 칭송하지 마라/임진년에 나 홀로 붉었더냐/진달래 철쭉 영산홍 자산홍/모두 일어나 온 산이/불 탓 듯이, 내 이름 위로/의병들의 선혈이 붉게 젖었다.....”(후략)
임승환씨는 한편의 시로 홍의장군 곽재우의 내적 고뇌를 나름대로 성의 있게 표현해 내고 있다. 홍의장군을 시적화자로 끌어내어 전승을 자신의 공과로 돌리지 않고, 전장에서 함께 피 흘리며 싸우던 다른 의병들에게 오히려 공을 돌리는 인仁의 장수 곽재우를 과장하거나 영웅시 하지 않고 무리 없이 시적으로 살려내어 서사시로서의 묘미를 배가 시키고 있다. 다소 서사에 치우치다 보니 시의 미적장치와 긴장미가 덜하다는 약점이 노출이라는 아쉬움에 선자를 망설이게 했지만, 요즘 한국 시단에서 찾아보기 힘든 서사에 주목했다는 점과 시를 대해는 진정성이 느껴져 기꺼이 우수상 작품으로 선정하였다. 모쪼록 더욱 분발하여 우수상에 답하는 좋은 시를 보여주기 바란다.
입상작으로 선정되지는 못했지만 나머지 응모작들도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작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용솟음치고 있어 한국 시단의 밝은 미래를 예견해주었다는 점에서 큰 소득이 아닐 수 없다.
입상자들의 무한한 발전을 바라며 천강문학상이 전국적인 응모자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뛰어난 시인들의 등용문으로서 한국 시단에 크게 이바지해 가기를 소망한다.
시부문 대상 수상소감
올여름 한가운데서 누군가와 영원히 이별했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의 죽음을 지켜보는 일은 독 한 방울을 삼킨 느낌이었다. 목이 타고 따끔거렸다. 여러 기억들이 엉켜 심장이 검뿌옇게 변하는 걸 희석시키듯 밤새 술집에 앉아 있었다. 손을 타지 않은 찌개가 몇 차례 데워졌다 식기를 반복할 동안 울분과 회환과 자책들이 빈 소주병처럼 나뒹굴었다. 새벽까지 들이부은 이별의 무게가 쓰라렸다. 익숙하지 않은, 낯선 패배감이 소란스러웠다.
사는 게 아니라 살아지고 있는 일상의, 쓰는 게 아니라 써지고 있는 詩의, 이물감이 당황스러웠다. 자신을 詩를 만지작거릴수록 휘고 구부러지고 뒤틀렸다. 뼛속까지 녹물이 흘러내리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뒤적이고 여름을 뒤척였다. 이렇게 살아도 될까, 싶었다.
아직 여름을 벗어나지 못했는데 가을 초입에 날아든 수상 소식, 얼떨떨하고 무섭고 부끄러워 꼭꼭 숨고 싶다. 내가 내 詩가 이 상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자꾸만 되묻게 된다.
멍석을 깔아 준 의령군과 <천강문학상> 관계자 여러분들, 그리고 부족한 詩를 선해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더 좋은 시를 쓰라는 격려,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축하한다, 라는 말 한 마디가 전부인 무뚝뚝한 가족들 사랑합니다. 또한 삐걱거리며 더디게 걷는 제 詩가 여기까지 오기까지 감사할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일일이 다 호명하지 않아도 때론 객지처럼 차갑고 날카롭고 때론 고향처럼 따뜻하고 다정한 당신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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