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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수주문학상 당선작 및 심사평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7. 7. 28.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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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수주문학상 당선작 및 심사평


[18회 수주문학상 당선작]

 

 

쇠정어리고래 외 4

 

 

                           하수현(본명 하성훈)

 

 

바람 떼가 시장통까지 따라 들어와

쇠정어리고래 주위를 맴돈다

생고등어 뱃속에 왕소금을 던지던 한 아낙은 바람결에 움찔하다가

고래 쪽으로 눈길을 단단히 꽂았고,

행인들도 언 발을 머리에다 이고는 모두 입을 닫는다

어쩌다 운명의 그물 안으로 뛰어든 고래가

시장 바닥에 드러누우면

흡사 집 한 채 통째로 자빠지기라도 한 듯

무조건 시장통 빅뉴스가 된다

 

쇠정어리고래의 허연 배에 어설픈 현관문 하나

뚝딱 만들어지고부터

창자 허파 태평양의 물결이 토막토막 잘려 나오고

뒤이어 나온 살덩이들은 붉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생애를 통곡한다

고래 창자에도 작은 창문을 내고 나니

소화가 집행유예된 오징어들,

()을 모를 만큼 절반쯤 무너진 물고기들,

한때 콜라가 주인이었던 붉은 페트병도 나온다

붉은 페트병은

그간의 암흑기를 털어내고 부활의 나라로 가리라 나는 믿는다

그다음으로는 포유류를 향한 알 수 없는 동정심도 도려내고

인도양 대서양의 수심(水深)을 후려치는

고래 떼의 장엄한 유영(遊泳)마저 뜯어낸다

 

비운의 쇠정어리고래는 잘린 살덩이들이 개별적으로 울었을 뿐

몸통이 절반이나 해체될 때까지

이 초유의 현실을 외면하느라 줄곧 눈을 감고 있다

어시장 바로 뒤편, 파란 바닷물 쪽을 보면

육신이 갈기갈기 찢긴 쇠정어리고래의 진혼을 위해

겨울바다를 비장(批狀)으로 달려온 고래 떼들이

상기된 낯으로 수런거릴 터인데,

울컥거리던 저녁바람도 이젠 날을 세운다.

 

 

 

 

 

 

 

 

[18회 수주문학상 심사평]

 

  예심을 거쳐 올라온 38명의 응모작들을 읽었다. 상상력의 과잉이나 언어의 위축 없이 각자 자기 시의 길을 걷는 시적 개성들이 인상적이었다. 그중에서 노인의 아침4, 꿈에 단골집 하나 있다6, 쇠정어리고래4편의 작품이 돋보였다.

노인의 아침외의 시는, 군더더기가 없다. 시의 형식은 온건하면서도 시 속에 전개된 인물이나 사건들은 일상 너머 비범한 삶의 풍경을 보여준다. “들판 여기 저기 아침의 돛을 올리는/농투성이들의 목선,”의 시구도 매력적이다. 하지만 함께 보내온 시의 편차가 뚜렷하고, 군더더기가 없는 나머지 시가 단조로운 언어의 회로에 갇혀 있어 아쉬웠다

꿈에 단골집 하나 있다외는, 말과 상상력이 부드러운 관절로 이어져 시상이 자유롭고 활달하다. “작은 나무문을 열면 늙고 무거운 시인이 탁자에 엎드려 고래처럼 울고 있다/그를 바다로 옮기는 일은 그만 두었다, 분명 새로운 언어의 문턱에 도달해 있다. 하지만 그 언어가 관습화된 인식의 지표를 뚫고 들어가 어떠한 시적 개성을 획득할 것인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졌다.

쇠정어리고래외는 쇠정어리고래의 허연 배에 어설픈 현관문 하나 뚝딱 만들어지고의 시구와 같이, 생생하고 적확한 묘사로 언어의 힘을 세운다. 잡혀온 쇠정어리고래의 해체를 통하여 생활의 파란만장과 삶의 비루함을 여지없이 폭로한다. 뚝심있는 말과 시선을 견지하면서도 대상을 윽박지르지 않고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걸어나오게 하는 솜씨도 돋보인다. 함께 보내온 작품의 수준도 고르고 치밀하다. 쇠정어리고래를 수주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한다. 응모작도 탄탄하거니와 앞으로 수상자의 시의 장래를 가늠해볼 때 그런 믿음은 더해진다. 수상자에게는 축하의 말씀을, 수상에 이르지 못한 이름들에게는 격려의 박수를 보내 드린다

    

                                                               

 

                                                                                                       심사 위원 : 이승하 . 송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