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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 나는 오늘 -진은영 시배달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8. 5. 11.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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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 「나는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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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오은

 

 

나는 오늘 토마토

앞으로 걸어도 나

뒤로 걸어도 나

꽉 차 있었다

 

나는 오늘 나무

햇빛이 내 위로 쏟아졌다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위로 옆으로

사방으로 자라고 있었다

 

나는 오늘 유리

금이 간 채로 울었다

거짓말처럼 눈물이 고였다

진짜 같은 얼룩이 생겼다

 

나는 오늘 구름

시시각각 표정을 바꿀 수 있었다

내 기분에 취해 떠다닐 수 있었다

 

나는 오늘 종이

무엇을 써야 할지 종잡을 수 없었다

텅 빈 상태로 가만히 있었다

사각사각

나를 쓰다듬어 줄 사람이 절실했다

 

나는 오늘 일요일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랬다

 

나는 오늘 그림자

내가 나를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잘못한 일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나는 오늘 공기

네 옆을 맴돌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너를 살아 있게 해 주고 싶었다

 

나는 오늘 토마토

네 앞에서 온몸이 그만 붉게 물들고 말았다  

 

   

 

작품 출처 : 강성은 외, 『의자를 신고 달리는』, 창비교육, 2015.

 

 

 

오은 |「나는 오늘」을 배달하며…

 

 
    정현종 시인은 ‘가슴 속의 진동’에 따라 사는 사람이 시인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진동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날마다 다릅니다. 오늘 하루는 나의 슬픔과 나의 변덕과 나의 잘못으로 내 가슴이 들썩입니다. 그렇지만 그다음 오늘은 햇빛이 쏟아져서, 쓰다듬어줄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네 곁을 종일 맴도느라 내 가슴이 흔들립니다. 그러니 사는 일이 진동 아니겠어요? 나에게서 나무에게로, 나에게서 당신에게로 계속 오고가면서, 나와 세계 사이에서 아름답게 진동하는 일.
 
 

   시인 진은영

 

* 정현종, 『정현종 시인의 사유가 깃든 로르카 시 여행』, 52쪽, 문학판, 2015.
 
 

문학집배원 시배달 진은영

▪ 1970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상담 교수
▪ 2000년 『문학과 사회』 봄호에 시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저서 『시시하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향하여』, 『문학의 아포토스』,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