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을 감기세요
이듬
구청 창작교실이다. 위층은 에어로빅 교실, 뛰고 구르며 춤추는 사람들, 지붕 없는 방에서 눈보라를 맞는다 해도 거꾸로 든 가방을 바로 놓아도 역전은 없겠다. 나는 선생이 앉는 의자에 앉는다. 과제 검사를 하겠어요. 한 명씩 자신이 쓴 시 세 편을 들고 와 내 책상 맞은편에 앉는다. 수강생과 나는 머리를 맞댄다. 어깨를 감싸는 안개가 있고 나는 연달아 사슴을 쫓아가며 총을 쏘는 기분이다. 전쟁을 겪은 후 나는 총을 쏘지 못하게 되었다.
이건 너무 상투적이고 진부하잖아요. 이렇게 쓰시면 안 됩니다. 노인이 내민 시에 칼질을 한다. 깎고 깎여서 뼈대만 남은 조각상처럼 노인은 앉아 있다. 패잔병의 앙상한 뺨을 타고 곧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다. 분노로 불신으로 이글거리는 눈동자는 아니다. 선생님, 방금 그 작품은 내가 쓴 게 아닙니다. 아무리 애써도 시를 쓸 수가 없어 유명한 시인의 수상 작품을 필사해봤어요.
내 머리는 떨어진다. 책상 위에는 첨삭하느라 엉망이 된 유명 시인의 작품이 있다. 그것은 마치 왜 그렇게 비싼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명품 브랜드 가방 같다. 노인이 나를 보며 웃지 않으려 애쓴다. 위에서 춤추는 사람들, 이름을 가리면 걸작을 못 알아보는 내 식견으로 누구를 가르치겠다고 덤빈 걸까?
―시집『히스테리아』(문학과지성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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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시마다 안타를 치고 홈런을 치면 좋겠지요. 하지만 시인들은 본인 스스로도 기대에 못 미치는 시를 쓰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처럼 표절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많은 시를 두고 비교 검토해보면 유사한 시도 참 많습니다. 유명 시인들이라고해도 다를 것도 없고요.
어떤 패기 넘치는 젊은 평론가가 한 원로시인의 시를 있는 그대로 소신대로 평을 하였는데 오프에서 만나 혼쭐이 났다고 합니다. 그 뒤 원로시인은 시를 쓰다가 전기가 나가는 바람에 미처 못다 쓴 다른 시를 잘못 보냈다고 합니다. 문학지에 실렸을 때 이 젊은 평론가는 온갖 미사여구를 다하여 골목 평을 했다고 합니다. 그것을 읽은 원로시인 스스로 얼마나 민망했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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