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時調)의 양태(樣態)
유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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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의 시원(始元)은 고려조 훨씬 전이지만 실제 등장 발단한 시기는 고려 말기이고, 조선시대에는 이 시조에 무반주로 가락을 붙여 여유로운 노래로 불렀는데 이를 '시조창'이라고 하며 시조창 한 가지를 알아두면 다른 평시조에는 모두 응용해 부를 수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1980년대 한국가요와 2000년대 한국가요가 템포가 빨라지는 쪽으로 변한 것처럼 시조창도 조선 전기에서 후기로 갈수록 점점 템포가 빨라졌다는 것이다.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시조에는 보통 제목이 없기에 초장의 첫 구를 제목 대신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남구만의 시조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넘어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를 창(唱)하는 경우 보통 종장의 '재 넘어~ 언제 갈려'까지만 읊고 마지막 음보는 생략한다. 그 후 이런 시조창으로의 시조는 문학으로의 시조시로 발전하여 오늘의 시조라는 문학 장르를 탄생시켜 단시조를 거듭 이어 하나의 시로 만든 '연시조'라는 새로운 형태도 만들어졌는데 현대의 시조 작가들은 보통 이 방식으로 시조를 쓴다. 그 후 발전을 거듭하여 현재에 이르러 자체발광의 결과로 현대시조는 다양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그 옛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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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조와 현대시의 변별성
‘현대시조는 그 내적 구조상 최소한의 의미단위가 이루어지는 구수율(句數律)을 지니고 있으며, 전체 12음보(소절)의 음보율(音步律)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초장, 중장, 종장 속에 펼쳐지는 4단의 의미구조를 가지고 있다. 3장의 짧은 내용 속에 현대시 1편의 의미구조를 담아 낼 수 있는 내적 틀을 갖추고 있는 것이 시조이다. 시조의 3장은 현대시의 3행과는 판이하게 다른 성격이며, 한 행을 이루는 2구의 성격도 현대시에서의 한 행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시조는 장과 장 사이, 구와 구 사이의 내적 의미의 연결성이 현대시에 비해 매우 긴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황진이의 시조에서 보면 기승전결의 시적 논리가 한 편의 시조 속에서 완벽하게 구사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마지막 종장에서 현대시의 전환과 결말을 포괄하는 의미구조를 갖추고 있는 점은 시조의 특장으로써 그 미학적 특성을 잘 살려나가야 한다고 본다. 이를 도식화하면 초장(도입부와 전개부)의 A, 중장(도입부와 전개부)의 B, 종장(전환과 마무리)의 C로 크게 3등분된다. 또한 A와 B가 연속적일 때보다는 A와 B가 변증법적인 대립형태를 취할 때 C의 기능이 증폭된다. 특히 C에서 전환과 마무리를 동시에 담당함으로써 3장의 시가 갖는 단조로움을 피한 채 오히려 입체적 효과를 증폭해내는 장치야말로 시조의 탁월한 특장이랄 수 있다. 요즘 많이 쓰이고 있는 연시조의 경우에도 각 수마다 개별 작품의 의미구조를 수렴하면서 전체적 통일성이 이루어져 할 것이다. 시조의 이러한 표현체제가 현대시조에 내적 율격으로써 정립된다면 현대시와의 변별성이 확연하게 드러나게 되리라 본다.’ 위의 글은 현대 시인이 본 현대시조와 현대시의 차이점을 통하여 시조의 시조로서의 위상을 알리기 위해 시조시학 2002년 봄호에 실린 박제천(경기대 대우교수)시인의 「한국 현대시조의 전통성 탐색―시적 의미 구조를 중심으로」라는 것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Ⅰ. 시조 종류
전통적인 시조의 종류로는 평시조, 연시조, 엇시조, 사설시조로 나눈다. 여기에서 우리의 전통을 그대로 이은 형식의 시조는 평시조인 단형시조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현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실험적으로 생겨난 모습이 있는데 양장시조와 단장시조, 연첩시조 등이다. 이들이 시차를 두고 언뜻언뜻 선을 보이고 있었다
Ⅰ.1. 단시조
3장 6구, 12음보율을 정확히 지켜 3행 또는 6행으로 장별배행이나 구별배행으로 쓴 한 수의 작품들이다. (여기서 3음절 이하로 된 음보를 소음보라 하고 4음절어로 된 것은 평음보, 5, 6음절로 된 것은 과음보라 한다.) 이를 장형시조에 대한 대칭으로 단시조라 부른다.
태산이 높다 한들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양사언
강 건너 저 마을에 꽃집들이 들어서자
서투른 마을에선 바람으로 채우다가
더러는 풍선이 되어 날아가고 있었다.
-이우종,「이농(離農)」
Ⅰ.2 연시조
한 제목 아래 단시조를 연첩하여 쓴 시조로 단수가 아닌 단수의 형태가 잇달아 나타나는 시조형태이다. 시대의 흐름을 타고 현대시조에서는 이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실정이다. 그 이유는 사회의 복잡성과 다양성에 따라 이를 표현하는데 한 수로는 부족하여 그리 쓴다고 본다.
<춘사(春詞)〉
강호에 봄이 드니 미친 흥이 절로 난다
탁료 계변에 금린어 안주로다
이 몸이 한가하옴도 亦君恩이샷다.
〈하사(夏詞)〉
강호에 여름이 드니 초당에 일이 없다
유신한 강파는 보내느니 바람이로다
이 몸이 서늘하옴도 亦君恩이샷다.
〈추사(秋詞)〉
강호에 가을이 드니 고기마다 살져 있다
소정에 그물 실어 흘리띄워 던져두고
이 몸이 소일하옴도 亦君恩이샷다.
〈동사(冬詞)〉
강호에 겨울이 드니 눈 깊이 자히 남다
삿갓 비껴 쓰고 누역으로 옷을 삼아
이 몸이 춥지 아니하옴도 亦君恩이샷다.
-맹사성,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
뚫린 구멍마다 임의 손이 움직일 때
그 소리 銀河 흐르듯 서라벌에 퍼지다
끝없이 맑은 소리 千年을 머금은 채
따스히 서린 입김 상기도 남았거니
차라리 외로울망정 뜻을 달리 하리오
―김상옥, 「玉笛」
날 새도록 울음 끝이 아직도 남았는가.
동그랗게 돌고 있는 늦가을 이파리
인생은 아름다워라 슬퍼서 아름다워라.
실없이 외롭거나 허기진 사랑 앞에
목이 꺾인 억새풀 물가로 기울었다.
인생은 아름다워라 아파서 아름다워라.
―유성규, 「여백」
인생을 달관하는 자세로 자연물과 인생을 접목시켜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나이도 먹고 보면 인생의 여백이 생기나 보다. 인생은 처음 스스로 울음을 터뜨리며 태어나 슬픔과 웃음을 섞어 살다가 세월을 다 비우고 끝내는 남에게 울음을 주고 떠난다고 한다. 사는 동안은 슬프고, 아프고 한 것은 인생의 아름다운 여정이라고 시인은 보고 있다.
불씨만이 걸린 외등 불빛 잃은 길목에 이 작품을 두고 이근배 시인은 이 몸과 넋 사이, 사랑과 나무 사이에서 오늘 우리가 넋이 없는 사랑에 대한 회초리가 시조의 가락으로 매섭게 감겨온다. 겨울의 도심에서 불빛 속에 몸만 챙겨 입고 간 사랑과 시골에서 왔는가 싶은 나무들이 오히려 몸을 벗어놓고 넋을 입고 가는 모습을 박경용은 보고 있다고 하였다. 채움과 비움을 느끼게 하는 시조이다. 자연과 인간을 대비시켜 피폐해가는 정신세계를 경계함이란 하나의 주제를 위해 두 수의 대비적 표현으로 일깨워주고 있다.
몇 개의 한 쌍 사랑이 몸만 챙겨 입고서는
무거워 거추장스런 넋은 놓고 가버리고
그 뒤를 두런두런 시골에서 왔는가.
한 떼의 나무들이 몸일랑 벗어두고
앞서 간 사랑이 남긴 넋을 입고 가버렸다.
―박경용 「겨울 저녁」
행여 네가 원한다면 두 겹 세 겹 접을게
세월도 접고 눈물도 접고 두툼하게 접어서
내 몸이 너의 위안이 될 수만 있다면
너의 바람벽이 될 수만 있다면
낡은 생명의 끈을 꼭 물고 있을게
아슴한 빛을 껴안고 뒤척이는 섬 마냥.
―○◯◯, 「딸에게」
앞의 작품 "딸에게"에서 전체를 아우르는 시구는 “낡은 생명의 끈을 꼭 물고 있을게”라는 둘째 수 중장으로 모든 구들이 접속되고 있다. 그러니 첫수 종장 ‘될 수만 있으면’은 종결이 안 되고 그 다음 둘째 수 중장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뒤의 작품「그믐」의 ‘드세었던’은 다음 수 초장에 곧바로 이어진다. 이렇게 끝맺음이 안 되면 시조로서는 그 틀을 벗어난 것이라 할 수 있다
靑山도 절로 절로 綠水라도 절로 절로
山 절로 절로 水 절로 절로 山水間에 나도 절로
그중에 절로 절로 자란 몸이니 늙기도 절로 절로 하리라.
-김인후(金麟厚), 「청산도 절로 절로」
수심 깊은 세월의 강 훌쩍 건너온 한나절,
저 홀로 메아리 풀며 글썽이는 물빛들이 포구 죄 점령하고
이 가을 다 떠난 자리 格子 풍경 예비한다.
-윤금초의 「빗살무늬 바람」
정철의 〈장진주사 將進酒辭〉에서 처음 시작되어 조선 중기까지 드문드문 나타나다가 조선 후기에 본격적으로 발달했다. 임진왜란 이후 영, 정조 시대를 거쳐 17세기말부터 19세기말까지 존속했던 장르이다. 종장은 비교적 평시조의 율격과 비슷하나 초·중장은 평시조의 율격에서 크게 벗어나 길어진 형태이다.이 사설시조 작품 가운데 백미(白眉)로는 조운의 <구룡폭포>가 꼽힌다. 요즘도 이 장르로 시조를 쓰는 이가 심심찮게 보이고 있다. 그러나 차츰 이를 시조로 취급하지 않는 경향으로 번지고 있어 앞으로의 그 추이가 궁금해지는 시조 형태이다.
사람이 몇 生이나 닦아야 물이 되며 몇 겁이나 轉化해야 금강에 물이 되나! 금강에 물이 되나! 샘도 강도 바다도 말고 옥류 수렴(水簾) 진주담(眞珠潭) 만폭동 다 그만 두고/ 구름비 눈과 서리 비로봉 새벽 안개 풀 끝에/ 이슬되어 그슬구슬 맺혔다가 연주담(蓮珠潭) 함께 흘러 구룡연(九龍淵) 천척절애(千尺絶崖)에 한번 굴러 보느냐 -조운(曺雲), 「구룡폭포(九龍瀑布)」 사람이 어쩌면 이렇게 슬퍼할 줄 안단 말이냐 팔 벌려 환히 웃던 내 마지막 아버지, 다시 올 수 없는 먼 길 떠나시고 울음은 죄이라 울음은 죄이라서 베인 살 파고드는 소금강(江) 흐른다./ 입동 무렵 저녁강(江), 벙어리 울음강(江) 붉게 흘려보낸다./ 살아생전 효도하라 누가 먼저 말했느냐, 누가 말해버렸느냐 옛사람 그 말 할 줄 몰랐다면 뼛속까지 저리진 않으리. 사진 속 아버지 끌어낼 수 있다면/, 마흔넷 아버지 마음 외톨이 배고픈 아이는 헤아릴 수 있으리. 석류빛 큰키나무 속으로 춥다. 춥다 하며 가는 실루엣, 너 무슨 새라 했느냐. -홍성란, 「벙어리 울음강(江)」
-최승범,「고원의 노래」
양장 시조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시조의 구성인 초장, 중장, 종장의 3장으로 이루어진 형태에서 중장을 생략하여 양장(2장)으로 줄인 형태의 시조형태이다. 즉 쉽게 말해 6구에서 4구로 시가 축약되어 있다. 내용이 짧은 시조로 1926년에 일어난 시조부흥운동 가운데 하나로 제기되어 1931년 주요한이 처음 선보인 데 이어 이은상이 '노산시조집 鷺山時調集(1932)에 '소경되어 지이다' 등 6수를 발표했다 이 시기 초반에는 이은상을 비롯한 여러 시조 시인이 양장 시조를 창작했으나, 일본의 정통 정형시인 와카의 5.7.5조와 7.7조의 2행 구조를 시조 3장에서 한 장을 뺀 형태로 접합시켜 본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형태가 지나치게 작위적이며 반일적인 민족 감정도 작용하여 작가들의 호응을 얻지 못해 잊히며, 이은상 역시 후속 작품을 발표하지 않아 실험작으로 그치고 말았는데 요즘 와서 이를 시도하는 이가 드문드문 눈에 띈다. 양장시조를 처음 시도하여 시집으로 발표한 이은상은 양장시조를 쓰는 이유를 [二章時調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시조 창작에 있어서 어느 때는 삼장의 형식도 깊은 내용을 담기에는 오히려 모자라지마는, 다시 어느 때는 삼장도 도리어 긴 때가 있다. 옛 사람들은 이른바 평시조의 삼장 형식보다 좀 더 여유 있는 엇시조니 사설시조니 하는 긴 형식을 마련하기도 했었다. 아니 시조 형식의 유래를 만일 고려가사에서 발전해진 것으로 본다면 긴 형식의 것이 차츰 줄어들다가 지금 우리가 말하는 보통시조의 3장 형식에까지 와서 그쳐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러면서도 3장 형식보다 좀 더 짧은 형식을 구상해 보지 못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이어 온 형식에만 만족할 수는 없다. 객관성을 부여할 수 있기만 하면 얼마든지 새로운 형식을 생각해 낼 수도 있는 것이다. 아니 이것은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 전통의 개척 발전을 위해서 보다 더 요청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한 걸음 더 내켜서 문화를 개척하고 창조하려는 의욕에서는 마땅히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술회한 적이 있다. 그러나 유구한 역사를 거쳐 정착되어 온 민족 시가를 그리 폄하하여 억지 장르를 만들면 안 된다.
남산에 푸른 솔 북악에 검은 바위
세운 뜻 그대로 있는데 한 해 간다 하더라.
-주요한, 「송년」
뵈오려 안 뵈는 님, 눈 감으니 보이시네
감아야 보이신다면 소경 되어지이다.
작은 것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시는
아버지 기쁜 옛 얘기 차곡차곡 접어둔 곳.
추억의 빗장 열면 눈앞에 떠오르는
수수한 반다지 표정, 삶의 숨결 스며 있네.
- 김혜선, 「반다지」
그리움 꼬옥 묶은 열 손가락 풀어헤치니
丹心이 새겨져 있네, 달쪽 같은 손톱에….
-이효정,「봉선화 물들이기」
상추 모 한 상자에 파씨가 따라와서
저 홀로 나고 피더니 흰 머리로 버티네,
-조순애, 「파꽃」
위와 같이 짧지만 무한한 함축을 가진 시조 형태이다. 그러나 실험에 그치고 문단에서 뒤안길로 사라졌다.
먼저 시조 형태를 보면 초기에 가장 흔하게 보였던 시조 형태로 지금도 흔히 쓰이는 모습은 다음과 같다.
나뷔야청산(에)가자범나뷔너도가쟈가다가져무러든곳듸드러자고가쟈곳에셔푸對接하거든닙헤셔나자고가쟈
- 육당본(六堂本)『청구영언(靑丘永言)』계이삭대엽(界二數大葉)에서
이를 현대어로 시조시형에 맞춰 다시 쓰면 다음과 같다.
나비야 청산(에) 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가다가 저물거든 꽃에 들어 자고 가자
꽃에서 푸대접하거든 잎에서나 자고 가자
-작자 미상
바람은 없다마는 잎새 절로 흔들리고
냇물은 흐르련만 거울 아니 움직인다
白龍이 허위고들어 잠깐 들석 하더라
― 정인보, 「만폭동(萬瀑洞)」 일부
다 부서지는 때에
혼자성키 바랄소냐.
금이야 갔을망정
벼루는 벼루로다.
무른 듯 단단한 속을
알이알까 하노라.
-최남선 「깨진 벼루의 명(銘)」
들어도 들어 올려도
끝내 들리지 않아야
그 물론 검버섯 같은 것이
거뭇거뭇 피어나야
― 조오현, 「일색변 1」 전문
이것은 어떤 일정한 배행 방법을 취하지 않고 장별, 구별, 소리마디별 배행을 뒤섞어 사용하여 시적 운치를 시각적으로 얻고자 하는데서 출발하는 형태이다.
두더지 대가리 같은,
피는 꽃도
차마
못
볼,
―이종문, 「고백」
지금까지는 장별 배행시조의 경우 행 길이가 시조의 내용과 이를 표현하는 시어에 따라 초, 중, 종장의 길이가 일정하지 않고 들쑥날쑥하였는데 이는 별 문제로 제기 되지 않았다. 그러나 고시조의 경우 중장이 글자 수가 초, 종장에 비하여 적은 경우가 대체적으로 많아 그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형태를 보여주었다. 이는 어느 면에서 음양의 조화를 시도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현대시조에서도 이런 모습이 잘 나타나고 있는데, 때에 따라서는 중장이 초, 종장에 비하여 길어진 경우도 있다. 그리고 초, 종장의 길이를 같게 하여 대칭을 이루게 표현하는 경향도 있다. 이는 조선조에 사상의 근저가 되었던 음양오행설에 그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한다. 이를 보면 다음과 같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쓴 두 편 중의 한편인 귀한 작품이 이에 상응하기에 이를 소개한다.
거리엔 벽만 우뚝 산 마슬엔 새밭 매고
전쟁이야 멀건 말건 봄바람 불어들어
피 흘려 싸우던 들에 속잎 돋아 나온다.
-이승만, 「전쟁 중의 봄」
하늘을 찌르는데 바늘마다 뿜어낸 독(毒)
그래도 식지 않은 원한은 부글거려
피멍이 붉게 여물어 터질 듯한 폭탄이다.
-문효치, 「바늘 엉겅퀴」
표현하고자 하는 시적 대상을 추상화하여 이를 상상력으로 머릿속에 그려지도록 도형화하여 표현하는 시조이다. 여기에 대표적인 것은 다음 작품이다.
눈보라 비껴 나는
─全─群─街 ─道─
퍼뜩 차창(車窓)으로
스쳐 가는 인정(人情)아!
외딴집 섬돌에 놓인
하나 둘 세 켤레 |
-장순하, 「고무신」
나비
나비
표현하고자 하는 시적 대상을 구상화하여 이를 직접 시각적으로 보며 느끼게 하는 도형으로 표현하고 있는 시조이다.
이영지의 작품은 엘리베이터(승강기) 속에서 계단을 지나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연상하게 하고 있다. 아파트 계단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상상의 그림으로 시각화하였다.
살던 이 두고 떠난 녹슨 물 펌프에
낮뻐꾸기 울음만 무시로 건너와서
어딘가 텅 비어 스산한 느낌까지 주는 시행의 배치를 하고 있다. 폐가가 되어 내부엔 아무 것도 없는 빈집에 옛 삶의 자취인 물 펌프에 뻐꾸기 울음만 흘러 그 울음이 발길 뜸한 시간을 옮겨놓고 있는 것만 같다. 봄날의 고적한 분위기가 쓸쓸함과 외로움을 자아내고 있다. 이 작품은 김흥열의 현대시조연구 P524에서 옮겨온 도형시조인데 읽고 보는 시조로서의 모습에서 이를 이해하고 파악하는데 띄어쓰기도 문제지만 어쩌면 거꾸로 읽어야 하는 불편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게 하는 시조이다.
위 작품은 한국문학세상 2008 봄호에 실린 것인데, 2004년 정월 보름 다음날 어머님을 여의였는데 그 때 꿈에 흰 날개를 달고 달로 날아오르시는 꿈을 꾸었다.
물러터진 홍시들은 맨 뒷줄로 밀려나고
침(沈)담근 땡감들이 앞줄로 나와 있다.
때깔이 화려할수록 몸값 또한 비싸니까.
-김흥렬, 「감 가게에서」
짚방석 내지 마라 낙엽엔들 못 앉으랴
솔불 혀지 마라 어제 진 달 돋아 온다
아희야 박주산챌망정 없다말고 내어라
-한석봉,
압운이란 시의 행이나 연의 일정한 위치에서 같거나 비슷한 음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엔 두운, 요운, 각운이 있다.
* 이 작품은 첫 음보의 첫 음절이 모두 같은 음(소리)을 내는 두운이요, 동시에 음소인 초성이 ‘ㅂ'으로서, 그리고 종성이 모두 ‘ㄹ'로 된 자음 운으로서의 두운이다.
* 이 작품은 첫 음소‘ㅁ’으로 된 자음 운을 가지고 있는 시조이다.
* 이 작품은 각 행에‘내’란 말이 첫 음보 첫 음절로 나와 두운이고, ‘종은’이라는 두 음절이 각 행의 허리 부분에서 규칙적 반복을 이루고 있으므로 요운에 속한다.
* 각 구의 끝이 모두 ‘∼노매라’로 일정한 리듬을 형성하여 각운이다.
*‘가을이었다.’라는 음절이 각 연의 셋째 행의 말미에 위치하여 규칙적 반복을 하므로 이는 각운에 해당한다.
가문 날 왜가리 외로움도 한 모금씩 타들 테지.
햇빛 아래 서 있는 누구라도 투명하다.
아빠를 부르는 아기 눈망울도 투명하다.
조막손 잡고서 웃는 아빠도 투명하다.
-하수미, 「피지 풍경」
* 위 작품은 ‘투명하다’가 초,중,종장 끝에 반복 배치하여 각운을 이루고 있다.
Ⅵ.1 상상형은 한 수의 작품의 끝맺음을 여백미를 두어 읽는 이가 생략된 부분을 상상하게 하는 고급 수법이다.
Ⅵ.3 종지형은 ‘〜다, 〜네’‘〜까, 〜냐, 〜구나, 〜어라’등 한 문장의 종결어미를 서술형, 의문형, 감탄형 등을 사용하여 작품을 맺는 방법이다.
Ⅵ.4 단절형은 명사나 명사형으로 의미를 한정하는 방법으로 특히 단시조에서 많이 사용되는 형태이다.
오늘도 또 보내고 빈손으로 틀어 앉아
썰려나간 갯벌 같은 가슴팍을 매만지면
흥건히 고이는 애모 뚝뚝 지는 낙엽소리
-장석주, 연가
Ⅶ. 종장의 첫 음보 문제
종장 첫 음보는 온전히 바로 뒤 둘째 음보에 종속(從屬)이 되어서는 안 된다. 종장 첫 음보에 (-의)가 붙는 명사나 명사형이면 그 다음 둘째 음보의 종속이 되니 이는 피해야 한다. 이들 사이는 서로 병립 내지 주술관계가 되면 좋고, 첫 음보가 둘째 음보에 수식 관계일 때는 용언의 관형형처럼 뒤 말을 꾸며주지만 거꾸로 그 말이 독립적으로 서술어 역할도 하면 무난하다. 또한 그 첫 음보를 둘째 음보 다음에 놓고 '-이다'란 조사를 넣어 뜻이 통하면 괜찮다. 그 첫 음보가 명사로 독립적일 때는 '조사'(-이, 가, 은, 는, 을, 를 등)를 붙여 둘째 음보와 ‘주어+술어’‘목적어, 보어+술어’ 관계를 이루는 독립적 요소가 되면 무난하다. 또한 띄어쓰기만으로 3 음절이어서는 안 된다. 어법상 독립적 3 음절이어야 한다. 이것이 시조 짓기의 기본이다. 또한 가끔 종장 첫구를 2 음절어나 4, 5, 6 음절어로 쓴 작품이 있는데 이는 절대 안 된다. 이를 실제 작품에서 본다.
장부의 위국충절을 적셔볼까 하노라
(최 영)[×]-종속적
이방의 언어 같던 생 어렴풋이 보인다
(서〇〇)[×]-종속적
꽃들의 연애사까지 속속들이 알게 한다.
꽃들의 유혹에 빠져 과로사로 죽어간다.
(임〇〇, 일벌에 대하여)[×]-종속적
말로 다 할 수 있다면 꽃이 왜 붉으랴
(이〇〇, 서시)[×]-2음절
박자 좀 놓치면 어때요, 막혔던 숨 쉬자는데
(조〇〇, 뽕짝)[×]-2음절
섬찟이짓 칼 발톱 세워 남의 가죽 헤치면서
(김〇〇, 뻐꾸기와 비비새)[×]-4음절
가오리 연 꼬리 흔드는 허공에 바람결 무늬
(장〇〇, 연 꼬리 세월)[×]-4음절
소쩍새 우는 봄밤에 진달래꽃 피고 있다.
(권〇〇, 그녀가)[×]-5음절
뿌리쳐 내지 못하고 팔 펴 물을 퍼준다.
(김〇〇, 비자나무)[×]-5음절
재 한 줌 없이 다 타버리고 남은 건 사리뿐
(이〇〇, 바다 다비)[×]-5음절
가까운 것도 먼 것도 두루 밥상 받듯 대하다
(박〇〇, 밥상 받듯)[×]-5음절
흰 커튼 사이로 불빛이 손짓하는 오두막집
(이〇〇, 오두막집)[×]-6음절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오노라
(월산대군)[O]-독립적
님 向한 一片丹心이야 가싈 줄이 이시랴.
(정몽주)[O]-독립적
열린 듯 닫힌 문으로 눈이 자주 가더라.
(최남선, 혼자 앉아서)[O]-독립적
손닿자 애절히 우는 서러운 내 가얏고여
(정완영,조국)[O]-독립적
하늘을 머리에 이고 기도하는 저 성자
(김월준, 장작을 패며)[O]-독립적
바람도 햇살에 익어 꽃씨처럼 터진다.
(이근배, 신명) [O]-독립적
위 작품 종장 맺음에서 [O]은 괜찮으나 [×]은 피하거나 쓰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특히 종장 첫 음보에 2, 4, 5, 6 음절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이미 이것은 시조가 아니다. 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는 시조의 변할 수 없는 불문의 틀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Ⅷ. 수사법의 실제
수사법은 읽는이의 감동에 호소하여 설득 효과를 올리기 위해 말이나 문장의 표현 방법이다. 일종의 언어의 연금술이다. 이런 수사법을 크게 분류하면 비유법, 강조법, 변화법 등이다.
Ⅷ.1 비유법(比喩法)
무엇인가를 표현하고자 할 때 그 표현을 좀 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하여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그와 비슷한 다른 현상이나 사물을 끌어대어 표현하는 방법이다. 여기엔 직유법, 은유법, 풍유법, 의인법이 있다.
Ⅷ.1.1 직유법(直喩法)
어떤 사물을 다른 사물에 직접적으로 빗대어 나타내는 표현법으로 …같다, …처럼, …하듯, …하는 양 등의 말이 쓰인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왕방연,
어스름 망망대해 홀로 뜬 침묵의 눈…
칠흑 같은 어둠 속 잠든 영혼 깨워놓고
한 마디 긴긴 느낌표 돛배 찾는 젊은 빛.
-엄동현의 「등대」
가난도 때오르면 부귀보다 사치롭고
한 고개 넘어서면 극락같이 열린 하늘
그 하늘 별 뜨는 가난 맨발로 우러러 서리
-박재두, 「어떤 가난」
메아리 푸른 곡선 넘칠 듯 잦아들 듯
연두에서 초록까지 넘어온 시간 앞에
버들치 헤엄친 물이 은지처럼 구겨진다.
-유재영, 「연두에서 초록까지」
뜨락에 좌선하듯 조용히 앉은 햇살
새들도 날아들다 숲으로 숨어드는
태우다 재만 남을 듯 불이 붙은 여름날
-고현숙, 「여름 이야기」
Ⅷ.1.2 은유법(隱喩法)
원관념은 숨기고 보조 관념만 드러내어,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설명 묘사하는 표현 방법으로 A(원관념)는 B(보조 관념)이다 형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싸리문 앞 서성대는 천년 세월 저 바람결
베 짜던 여인네는 날줄씨줄 꿈을 엮고
순백의 사랑 이야기 속삭인다, 창가에서.
-박인혜의 「純白의 언어」
사위가 짙푸른데 당돌하게 붉은 사연
꽃보다 더 진한 연정 골짜기에 몸 숨겨도
솔바람 교향악 속에 죄 드러난 속마음.
-김선자의 「단풍 연가」
흰 거품 물고 오는 한 마리 물새였네.
오장육부 드러내며 온몸으로 와서 우는
내 죽어 촉루로 빛날 그대 하얀 가슴 속
-김민정, 「바다」
돈은 똥이다. 뒷거래 구린내
나누고 뿌렸더니 거름이 되었네.
똥냄새 범벅타령 너머 까만 씨앗 웃는다.
-김민주, 「돈은 똥이다」
Ⅷ.1.3 풍유법(諷喩法)
알레고리(Allegory). 본뜻은 뒤에 숨겨놓고 비유하는 말만으로 숨겨진 뜻을 넌지시 나타내는 표현 방법이다. 속담 ․ 격언 등이 이에 속한다.
백설이 자자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
반가운 매화난 어느 곳에 픠였난고
석양에 홀로 셔 이셔 갈 곳 몰라 하노라
-이색,
구름 : 신흥세력, 매화 : 우국지사
가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
성낸 가마귀 흰빛을 세울세라
청강에 조희 씻은 몸 더럽힐까 하노라.
-포은 모
가마귀 : 시정 잡배, 백로 : 지조 있는 선비
Ⅷ.1.4 의인법(擬人法, 혹은 活喩法)
사람이 아닌 사물을 사람이나 생물에 견주어 무생물에 생명을 부여하여 나타내는 표현기법이다.
잎 넓은 손바닥에 하늘빛을 훔쳐 받아
온몸에 뿌려놓고 겁에 질려 파란 표정
소낙비 콩서리 뒤에 너훌너훌 춤사위.
-우순조, 「벽오동」
눈비 질척거려 어깨 낮춘 돌담길로
서성대는 전신주마다 타전(打電)하는 윙윙 소리
저 눈발 흰옷 걸치고 귀가하는 나의 겨울.
-권오진, 「겨울 삽화」
육신을 비비다가 아픔도 부딪치고
한 바퀴 돌 때마다 어금니를 갈고 있어
삐거덕 장천을 갈아 고운 목청 남길 건가.
-송귀영, 「맷돌 타령」
Ⅷ.1.5 대유법(代喩法)
한 사물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물로 다른 사물을 표현하는 환유와 사물의 한 부분으로 전체를, 또는 말 한 마디로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나타내는 제유의 표현 방법이다. ‘빵’식량을, ‘감투’벼슬을 나타내는 따위가 이에 해당된다.
낫, 삽 : 평민-(환유),
일손 : 농민, 돛 : 배, 빵 : 식량, 감투 : 벼슬-(제유)
정오의 빈 들녘에 핏빛 노을이 타오른다.
숨찬 경운기 부대 속속 읍내로 들어서고…
물 건너 몰려온 한파 우짖고 있는 풀뿌리
-송선영, 신 귀성록
* 들녘 : 농촌 제유, 경운기부대 :농민 제유, 풀뿌리 :백성 환유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 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난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하여라
-청음 김상헌,
* 조선왕조 환유
Ⅷ.1.6 중의법
어떤 문장에 쓰인 낱말이 2가지 이상으로 해석되는 경우를 말한다. 언어의 단조로움으로부터 벗어나 여러 의미를 나타내는 수사법이다.
興亡이 有數하니 滿月臺도 (秋草)l로다 오백년 王業이 牧笛에 부쳐시니 夕陽에 지나는 客이 눈물 계워 하노라. -원천석, * 추초 : 가을풀, 왕조몰락, * 목적 : 목동피리, 허무감 * 석양 : 지는 해, 왕조물락 수양산(首陽山) 바라보며 이제(夷齊)를 한(恨)하노라 주려 주글진들 채미(採薇)도 하난것가 아모리 푸새엣 거신들 긔 뉘 따혜 낫다니. -성삼문 * 수양산 : 세조, 산이름, * 따 : 땅, 조선 청산리(靑山裏) 벽계수(碧溪水)ㅣ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도라오기 어려오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여간들 엇더하리 -황진이, * 벽계수 : 푸른 시냇물, 왕족(인명), * 수이 감 : 인생무상 명월 : 밝은 달, 황진이, * 쉬어간들 : 향락 * 표현: 의인법, 중의법, 설의법, 대조법 행여나 다칠세라 너를 안고 줄 고르면 떨리는 열 손가락 마디마디 에인 사랑 손닿자 애절히 우는 서러운 내 가얏고여 -정완영, 조국 * 마디마디 : 방방곡곡, * 가얏고 : 조국 우리 집 가는 길목 붕어빵 굽는 여자 모자와 마스크로 눈매만 남은 얼굴 물 찾아 먼 길에 지친 베두인 아낙 같다 응, 아들 엄마 바뻐, 좀 있다 전화할게 보란 듯 피어오른 마스크 벗은 얼굴 별이다 사막의 별빛 봉지 가득 담아준다 ―이광, 「별이다」 1, 3수(?월간 스토리문학?, 2010. 5) * 사막의 별빛 : 사막에 뜬 별, 붕어빵
Ⅷ. 2 강조법(强調法)
강조법은 어떤 부분을 특별히 강하게 주장하거나 두드러지게 하여 뚜렷한 인상이 느껴지게 하는 수사법이다. 강조법에는 과장법, 반복법, 영탄법 등이 있다.
Ⅷ. 2. 1 과장법(誇張法)
어떤 사물을 실제보다 훨씬 크거나, 혹은 작게 형용하는 표현법이다. 강조법을 구사할 때는 거시(巨視) 세계와 미시(微視) 세계를 적절하게 융합 ․ 대비해 보이는 것이 효과적이다.
천지로 장막삼고 일월로 등촉삼아
북해를 휘어다가 주준에 대어두고
남극에 노인성 대하여 늙은 뉘를 모르리라.
-이안눌(李安訥), 「천지로 장막 삼고」
내 오늘 서울에 와 만평 적막을 산다.
안개처럼 가랑비처럼 흩고 막 뿌릴까보다.
바닥난 호주머니엔 주고 간 벗의 명함.
-서벌의 「서울 1」
늦은 밤 TV를 통해 문학기행 떠나본다.
잠을 턴 천년 고분 명장도 일어서고
시공을 단숨에 달려올 저 요란한 군마소리
-윤경례의 「문학기행」
Ⅷ. 2. 2 반복법(反復法)
같거나 비슷한 어구(語句)를 되풀이하여 문장의 의미를 강조하는 수사법이다.
천년을 누웠는가 만년을 누었는가.
하늘은 물빛 닮고 의림지 하늘 닮았는데
우리 둘 사랑의 의미 무슨 色相 닮았을까.
- 정연용의 「의림지」
오늘 이 아픔들을 말로 다 못할 것이라면
무심히 그냥 그렇게 겨울강을 가보아라
은밀히 숨죽여 우는 겨울강을 가보아라
귀 기울이면 선한 소리, 내심의 너 겨울강아
근심의 잔뿌리랑 잔기침의 매듭꺼정
이대로 잠보다 긴 꿈, 꿈에 갇힌 겨울강아
이제 우리네는 밤중에도 눈을 뜨고
가슴 속은 임의로 문신한 햇덩이가 탄다지만
가진 것 다 뿌려준 후에 가득 차는 이 절망아
한숨의 이 씨날에 날줄은 무얼 넣나
없는 것은 다 좋고 하나쯤은 있었으면 싶은
뜨거운 숨의 뜨거움을 빙판 높힌 겨울강아
보겠는가, 눈뜨고 눈감고 보겠는가
무심히 그냥 그렇게 겨울강을 보겠는가
상류로, 상류로부터 걱정만 쌓는 겨울강아
- 박시교의 「겨울강」
떠나갈 길 아직 멀다 불혹 넘기고도
삼년을 떠나보낸 길들이 어지럽다
뒤늦게 격포를 지운다. 삶의 허허벌판.
일직선의 몇몇 길들 풀꽃들이 넘어진다
풀 죽여 결린 어깨바람처럼 꺾이던 길
젖은 삶 다시 젖지 않는다. 벌거숭이의 이 길은
-이재창의 「적요의 시·1」
Ⅷ.3. 변화법(變化法 혹은 還元法)
문장에 단조로움이 없이 하여 생기 있는 변화를 주기 위한 수법을 말한다. 변화법에는 도치법, 인용법, 경구법, 대구법이 있다.
Ⅷ. 3. 1 도치법(倒置法)
어떠한 뜻을 강조하기 위해 말의 차례(語順)를 뒤바꾸어 놓음으로써 중심 내용을 더욱 두드러지게 표현하는 방법이다.
태곳적 그 예부터 아픈 사연 녹아들어
푸르른 눈물들이 얼룩진 수목들로
내 안을 서려드는가, 사색의 보금자리.
- 김윤의 「고향」
하늘 저 끄트머리 안개꽃 영혼 난무하고
바람이 건네는 초록빛 물 묻은 언어,
어부는 짐을 꾸린다. 황혼의 무게 등에 지고.
-이명재의 「바다 풀꽃 이야기」
Ⅷ. 3. 2 인용법(引用法)
자기의 이론을 증명하거나 주장을 강조하기 위해 남의 말이나 글, 또는 고사(故事)나 격언 등을 인용하는 수사법이다.
陶淵明 죽은 後에 또 淵明이 나단 말이
밤마을 옛 일흠이 마초와 갓틀시고
도로와 守拙田園이야 긔오 내오 다르랴
-김광욱, 「율리유곡」
북 장구 꽹과리에 징소리가 어우러진
앞마당 멍석 위에 둥 따닥 굿판 났다.
걸립패 사물놀이에 달도 차서 출렁이는….
그냥 그 무명 적삼, 수더분한 매무새로
폭포수 쏟아놓다 바람 자듯 잦아드는,
신바람 자진모리에 애간장을 다 녹인다.
달하 노피곰 도도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도리/ 아으 다롱디리
얼마나 오랜 날을 움츠린 목숨인가.
관솔불도 흥에 겨워, 흥에 겨워 글썽이는
어긔야 어강도리 아으 다롱디리
-윤금초, 「청맹과니 노래」
Ⅷ. 3. 3 대구법(對句法)
어조(語調)가 비슷한 문구를 나란히 병렬하여 문장에 변화를 주는 표현 방법이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와 같이 앞 문장가 뒤 문장이 ‘=’로표현 되는 방법이다.
말 업슨 靑山이요, 態 업슨 流水ㅣ로다.
갑 업슨 淸風이요, 님자 업슨 明月이라.
이 中에 病 업슨 이 몸이 分別 업시 늙으리라.
-성혼(成渾)
窓前에 풀이 프라고, 池上애 고기 뛰다
一般生意를 아나 이 긔 뉘런고
어즈버 光風霽月 坐上春風이 어졔로온 듯하여라.
-장경세, 「강호연군가」
투박한 나의 얼굴, 두틀한 나의 입술
알알이 붉은 뜻을 내 어이 이르리까.
보소서 임아 보소서 빠개 젖힌 이 가슴
-조운,「석류」
낙동강 물고기가 산에는 왜 앉았을까
강이 올렸을까 산이 끌었을까
스스로 木魚 되려고 비늘 세워 올랐을까
<서태수, 「만어사萬魚寺 -낙동강․417」
Ⅷ. 3. 4 연쇄법(連鎖法) : 앞 구절의 끝 부분을 다음 구절의 머리에서 다시 되풀이하는 표현 방법입니다.
古人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 못 뵈.
古人을 못 뵈도 녀던 길 앞에 있네.
녀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녀고 엇뎔고.
-이황, 「도산십이곡」
‘고인’과‘녀던 길’이 끝말잇기처럼 나타나고 있다. 다음 시조에서는 ‘백구’와 ‘도화’가 그렇다. 청량산 六六峰을 아는 이 나와 白鷗 백구야 喧辭하랴 못 믿을 손 桃花로다 도화야 떠지지 마라 魚舟子 알까 하노라. - 이황 「청량산가」 훤사(喧辭)-말을 함부로 하여 소문내다. 어주자(魚舟子)-어부
Ⅷ. 4. 상징법(象徵法)
상징법이란 어떤 사물이나 관념을 직접 나타내지 않고 다른 사물이나 관념에 의해 암시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이다. 상징법은 원관념을 찾기 어렵고, 특히 추상적인 것을 구체적인 사물에 빗대어 표현하는 데 자주 쓰인다.
묏버들 갈해 것거 보내노라, 님의손듸
자시난 창(窓)밧긔 심거 두고 보쇼셔.
밤비에 새닙곳 나거든 날인가도 너기쇼셔.
-홍랑,
* 묏버들 : 임에 대한 불변의 사랑 창조적 상징
정오의 빈 들녘에 핏빛 노을이 타오른다
숨찬 경운기 부대 속속 읍내로 들어서고···
물 건너 몰려온 한파 우 젖고 있는 풀뿌리.
-송선영, 「신 귀성록」
* 풀뿌리 : 민중, 백성 관습적 상징
지붕이 초가라도 하늘을 떠받쳤고
우물이 깊었기에 가뭄을 견딘 게야
까치야 우리 손자들 언제 온다 하더냐
-박헌수, 「고향」
* 까치야 : 소식의 관습적 상징
한 치씩 검은 보자기 펼치며 쓴 저 보름달
야릇한 술래가 되어 “나 찾아 봐”한다
그 사이 停電된 하늘은 피난 시절 땅 밑 굴속
-경규희, 「개기일식」
* 해가 달에 가리어 가는 모습과 가려진 상황을 창조적 상징으로 표현
직진은 왠지 두렵다. 길이 곧 끝날 것 같다.
U턴하여 젊은 날로 돌아갈 수 없을까
마음의 U턴 신호 받고 오늘도 젊게 산다.
-김태은, 「 U턴 신호」
* U턴은 되돌아감을 표시하는 창의적 기호 상징이다.
Ⅸ. 시조에서의 심상(心象)- 이미지(image)
Ⅸ.1 뜻
시조를 읽을 때, 언어로 그려내는 마음 속 상상의 그림으로, 사물의 감각적인 영상, 또는 느낌을 말한다. 이는 체험을 바탕으로 감각 기관을 통하여 형성된다. 그래서 시조를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한다. 여기서 “상상력이란 자연이 결합시켜 놓은 것을 분리하고, 자연이 분리해 놓은 것을 결합시키는 인간의 힘”이라고 wheelwright는 말하고 있다.
Ⅸ.2 심상의 시조적 기능
① 구체성 : '그 여인은 더없이 아름답고 우아하다.'라는 서술보다는 '그 여인은 이슬 먹은 한 송이 백합꽃.'이란 표현이 훨씬 생생하고 구체적이다.
② 함축성 : 미묘한 느낌이나 생각을 각종 심상을 활용하여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조오현의 '비슬산 가는 길'에서 ‘절은 또 먹물 입고 눈을 감고 앉았을까’에서 ‘먹물’이란 시어가 있는데 이는 불성을 함축하고 있다
③ 감각의 직접성 : 이미지는 대개 감각적 경험과 구체적 사물을 나타내는 언어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뚜렷하고 직접적인 인상을 준다.
Ⅸ.3 심상의 종류
① 시각적 심상 : 색체, 명암, 모양, 움직임 등을 나타내는 시각적인 시어나 시구에 떠오르는 상, 또는 느낌
검은 박쥐 떼같이 밤은 날개를 펴고
(이은상, 밤)
정령 할 말/ 그렇더냐./추적추적추적추적
(정운엽, 비)
네 얼굴 눈에 밟혀/ 주춤주춤 하는 사이
(김종영, 과속방지턱)
② 청각적 심상 : 구체적인 소리를 나타내는 시어나 시구에서 떠오르는 상
진달래 사태 진 골에 돌돌돌 흐르는 물소리
(이호우, 산길에서)
쟁, 쟁, 쟁/ 장죽을 떨던/ 조부님 먹빛 환청
(김영기, 오죽)
③ 미각적 심상 : 맛을 나타내는 시어나 시구에서 떠오르는 상, 또는 느낌
내 고향 하늘빛은 열무김치 서러운 맛
(정완영, 고향 생각)
한 숟갈 비린 바다가 게워 올라온 어머니
(김윤숙, 섬의 기억)
들녘은 누렇게 누른/ 누룽지 맛나고요
(이승현, 백로)
소금 한 포를 샀다. 그 짭조름한 사랑을
(김은숙, 소금의 맛)
창시는 다 녹아버리고 코끝 얼큰한첫사랑
(구영애, 애랑)
④후각적 심상 : 냄새를 나타내는 시어나 시구에서 떠오르는 상, 또는 느낌
꽃처럼 향기롭고별 같이 빛난 것이
(이희승, 선(善))
잘 익은 죽음으로 향하는/ 생이/ 온통/ 향기롭다
(정수자, 생이 향기롭다)
새우젓 풍겨드는 콧등 시린 살 냄새
(김명호, 새우젓)
가슬가슬한 이마 위에 낙엽 타는 냄새가 난다.
(김영철, 붉은 감기)
꽃 창살 고풍 서리에 홍매향이 벙글다.
(정정조, 춘매 단수)
실명은 밝히지 않고 구린내만 풍기기에
(차경섭, 아리랑 2)
⑤ 촉각적 심상 : 촉감을 나타내는 시어나 시구에서 떠오르는 상, 또는 느낌
둘 서로 손잡아 줄 때/ 살갗에 닿는 이 두근두근
(김수엽, 사랑은)
어쩌자고 저를 벤낫을 향기로 감싸는지
(민병도, 들풀)
갓난애 토실한 고운 속살 생각난다.
(유준호, 햇감자)
파도가 어루만지며 괜찮다, 이젠 괜찮다
(이동륜, 파도)
정갈한 댓돌 위에 여린 햇살이 따습다. (신군자, 가을 산사에서)
⑥ 공감각적 심상 : 함께 어우러져 쓰인 둘 이상의 감각적인 표현에서 떠오르는 상, 또는 느낌. 감각의 전이 현상이다.
날 세워 창살을 베는 서슬 푸른 넋이 있다.
(김상옥, 한란)
돌 돌 돌 어둠을 씻는다. 새가 와서 지저귄다.
(류제하, 반지)
목청이 푸른 이끼 게워내는 울음이랴
(오승철, 누이)
그런 밤 쏟아진 별빛은 시리도록 파랗다.
(조순호, 진달래)
• 마무리
지금까지 고려 말에 시조가 세상에 얼굴을 내밀은 이후 조선조에 중흥을 이루다가 잠시 숨을 멎고 엎드렸다가 다시 광복과 함께 힘찬 호흡을 하며 생생한 모습으로 등장하여 오늘의 시조문학을 이루었다. 그 간의 그 흐름에 다른 변모와 부침했던 시조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표기 형식에서는 장별 배행의 전통형에서 구별 배행, 음보별 배행시조와 도형시조까지의 모습이 나타났다. 여기에 개성적 배행의 모습도 보이는데 이는 현대시의 줄 바꾸기와 너무 닮고 시조의 구와 장의 호흡이라는 대명제에도 어긋나 이는 지양해야 할 방법이다. 그리고 음양오행에 접목한 대칭적 배행 방법으로 장별 배행을 바탕으로 함으로 보는 시조로서의 안정감이라는 측면에서 한번 시도하여 봄직하다. 또한 종래는 시조의 종장이 시조의 핵심구인 주제 구였는데 이도 초장에서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중장에서 나타나는 경우도 있어 다양화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표현에 있어서도 압운법이 등장하여 두운, 요운, 각운의 모습이 있는 시조도 등장하고 있다. 또한 종장 마지막 음보 처리도 종지형, 연결형, 상상형, 단절형 등 여러 모습으로 시조가 맺음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시조의 형태에서 양장시조, 단장시조, 연첩시조 등이 나타났었지만 지금은 이들은 힘을 얻지 못하고 한 때의 실험에 그치고 말았다. 또한 엇시조는 현대에 와서는 창을 하는 경우 존재하고, 문학으로서의 시조로는 존재가치를 잃어버렸다. 지금 때로 몇몇 시조시인들이 사설시조를 써서 선보이고 있지만 이도 사양길에 들어섰다. 이는 시조로의 모습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지 못하는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대에 들어오면서 수사법도 다양화하여 다기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미지의 전개도 더욱 화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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