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두
이우디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고장난 후렴구가 병실 창문 넘어가면
새를 품은 허공은 종종 금이 갔다
새들의 눈물 받아먹은 구름
북쪽으로 흐르다 신호등에 걸리고
노래인지 신음인지 흐늑흐늑
창밖, 은행나무 흔들면
부러진 화살 같은 햇살 속에서
죽은 물고기가 떠오르기도 하였다
병원 뒤뜰에 납작납작 주저앉은 우울한 가락
민들레처럼 채송화처럼
봄, 여름 다 보내고도 시들 줄을 몰랐다
계단에 걸터앉은 앉은뱅이처럼
일어설 줄 모르는 마른 뼈들이
연주하는 두만강,
침묵하는 먼 강바닥으로
아버지 자꾸 미끄러지셨다
님에게, 로 가시는 환승역에서 잠시
젖은 몸 말리는 뱀처럼 마르고 마르다가
푸석푸석 입김만 날리다가
더는 남길 게 없다는 듯
거품만 게우다가,
음의 파도 저어가는 파두처럼
낡은 의자에 앉아 듣던 높낮이 한결같아서
은행잎 떨구는 가을이 시들었을 뿐
그 강은 마르지 않았다
ㅡ시집『수식은 잊어요』(황금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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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우디 시인의 시는 어렵다. 어떤 시는 몇 번을 읽어도 독해가 되지 않는다. 지하에 뿌리가 있고 1층에 줄기가 있고 3층 4층 5층에 잎과 가지 꽃과 열매가 있는 층층구조라면 얼마나 보기 편하겠는가. 이 시인의 시를 대하면 마치 여기저기서 화살을 쏘고 기습적으로 창을 찌르는 복병처럼 어디서 공격을 하는 건지도 모르게 찔리고 만다. 해서 이우디 시인의 시를 읽으려면 찔리지 않기 위해 갑옷을 입고 단단히 무장을 하고 미리 방어의 벽을 쌓고 봐야 한다.
소통이 되는 시도 많은데 암시, 예시 연결도 즐거움도 없는 시를 본다는 것은 고역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 시집의 시가 모두 불통이지는 않다. 위에 소개한 ‘파두’처럼 내용도 좋고 시를 읽는 맛이 좋은 시도 있다. 파두는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서정적인 분위기의 민속 음악이라고 한다. 시는 “파두” 라는 낯선 이국의 언어에 애절한 사부가思父歌를 담았다.
시라는 것이 내용만 좋고 이미지만 형성하면 무슨 맛일까. 시를 읽는 맛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이 시에서 보듯 표현미이다. “새들의 눈물 받아먹은 구름” “부러진 화살 같은 햇살” 등 낯선 표현들이 주는 신선한 맛과 이런 심상의 표현들을 보는 것은 또 다른 시 읽기의 즐거움이다. 시의 의미나 내용을 떠나 이런 심상의 미적 표현만으로도 이 시는 읽을 가치, 즉 시를 읽을 맛이 나는 것이다. 비단 이 시 뿐 아니라 이 시인의 많은 시편에 이런 미학적인 표현들이 산재 한다.
소통이 되는 시도 있지만 이 시인이 시는 소통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인이 이런 시를 쓰는 것은 시인의 시 쓰기의 지향과 관점이 어디에 있는지 뚜렷이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시의 취향과 기호에도 맞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시들의 완결성을 위해 얼마나 각고의 노력을 하였겠는가. 아마 수많은 날밤을 세웠을 것이다. 지금도 그 열정을 볼 수 있는 것이 그렇게 길지 않은 시력에 비해 벌써 시조집 2권에 시집을 또 한 권 낸 것이다. 시조와 시를 넘나드는 정열적인 모습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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