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읽고 -수필

감꼭지에 마우스를 대고 / 최금녀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0. 4. 14.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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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꼭지에 마우스를 대고


최금녀                    
 


내 몸에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를 따내온 흔적이 감꼭지처럼 붙어 있다
내 출생의 비밀이 저장된 아이디다

 

몸 중심부에 고정되어
어머니의 양수 속을 떠나온 후에는
한번도 클릭해 본 적이 없는 사이트다

 

사물과 나의 관계가 기우뚱거릴 때
감꼭지를 닮은 그곳에 마우스를 대고
클릭, 더블클릭을 해보고 싶다

 

감꼭지와 연결된 신의 영역에서
까만 눈을 반짝일 감의 씨앗들을 떠올리며
오늘도 나는 배꼽을 들여다본다

 

열어볼 수 없는 아이디 하나
몸에 간직하고 이 세상에 나온 나.

 

 


―계간『애지』(2004년 겨울호)

 


  좋은 시가 무엇일까. 시를 조금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고민을 해본 화두겠지요. 그래서 저도 이런저런 시집을 사 보았습니다. 좋은 시를 찾아서 이 문학지 저 문학지를 기웃거려보기도 하고 개인 시집을 사 보고 원로시인의 전 생애의 시를 담아놓은 시 전집도 사보았습니다. 그리고 좋은 시를 모아놓은 '2008 올해의 좋은시와 시가 오셨다' 같은 시집도 사보고 개인 평론집도 사 보았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시가 너무 어렵습니다. 나만 시를 이해못하고 어려운가 싶어서 여러글들을 읽어보니 한 평생 시를 쓰면서 시력 30년이 넘는 시인들도 그런 고충을 토로해놓은 글이 많이 보였습니다. 저으기 안심이 되면서도 빈들에 홀로 서있는 나무 같은 마음을 떨쳐버릴 수는 없겠지요.

 

  그러면서도 한편 시가 쓰는 것일까, 쓰여지는 것일까에 대해서 궁금증을 가지기도 했었는데 이재무 시인은 자기의 경험에 비추어 오래 걸리지 않고 비교적 쉽게 쓰여진 시가 독자들에게 더 사랑을 받는다고 합니다. 쓰여지는 시이든 만들어 쓰는 시이든 퇴고과정에서 참신한 단어하나라도 더 추가하고 군더더기는 없는지 살펴보아야겠지요. 특히 시에서 오류부분은 없는지 필히 유심히 봐야할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느 시인의 어느 작품이라고는 말을 못하지만 시에서 오류가 나는 시들이 참 많습니다. 언젠가 제가 관여하고 있는 카페에 올라 온 시 가운데 나팔꽃이 들어간 내용이 있었습니다. 자정에 잠이 안 와 뜰을 걷다보니 나팔꽃이 활작 피어 먼데서 오는 사람처럼 그리움이 피여난다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나팔꽃은 이른 아침에 피는 꽃이여서 오류가 아니냐고 했더니 잠이 안 와서 앞 마당을 서성이다가 달밤에 핀 나팔꽃을 분명히 봤다고 하면서 공개적으로 꼬리글을 올려 망신을 샀다고 하며 몹시 화를 내서 민망한 적이 있었지요. 그리고 또 한 번은 뻐꾸기는 여름 철새라 이르다 해도 5월말이나 6월초나 돼야 뻐꾸기가 울텐데 진달래가 피어나는데 뻐꾹새가 운다고 한 시도 보았지요.

 

  제가 여기서 예를 든 것은 아주 사소한 것이고 꽤 이름이 알려져 있는 시인들의 시에서도 이런 오류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시에서 지적 기능이 미약한 부분이라 할지라도 명색이 시인이라면 퇴고과정에서 스스로 오류를 찾아내야하고 또 평론가들 또한 이러한 부분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금녀 시인의 '감꼭지에 마우스를 대고'를 읽는 순간 참신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배꼽을 감꼭지로 연상을 하고 또 마우스로 사유를 확장시켜 힘들고 어려울 때 한번쯤 되돌아가고 싶은 원천의 고향으로 컴퓨터 용어인 더불클릭을 해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겠지요. 

 

  '열어볼 수 없는 아이디 하나
  몸에 간직하고 이 세상에 나온 나.'


  5연 1행에 '아이디 하나' 라고 했는데 포괄적 개념으로는 틀린 것은 아니지만 '아이콘 하나' 라고 표현을 했으면 보다 정확한 시어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최금녀 시인은 이 작품은 '강남시문학회의 2004년 1월분 테마 "배꼽"을 주제로 쓴 시이다' 라고 하면서 이 작품으로 나는 시가 반드시 영감이나 시의 씨앗이 뿌려지지 않아도 시가된다는 확신을 얻었다. 고 합니다.

 

  그러면서 또 한 편으로는 테마시는 '황무지를 고래실논으로 바꾸는 일만큼이나 힘드는 작업이다. 테마시는 작가가 흥분하지 않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심정적인 진술을 피할수  있어서 좋았지만 실제로는 쓰기가 너무 껄끄럽다. 요즘도 테마시 앞에서 시상이 잘 떠오르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라고 하면서 만들어쓰는 시 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완화삼(玩花衫)/조지훈/나그네/박목월> 에도 천양희 시인의 시 '직소포에 들다' 는 13년만에 완성이 되고 '마음의 수수밭'은 8년만에 얻어졌다고 인용을 했지만 오랜 세월 걸쳐서 쓴 시가 있는 반면 어머니를 생각하면 쓴 시 '그믐달' 은 30분만에 썼다고 합니다. 설익어서 익혀서 나오느라 오래 걸린 시가 좋은지 숙성시킬대로 시킨 다음 바로 나오는 시가 좋은지 그것은 작품으로 말을 하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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