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꽃
이우디
열 손가락 모자라 헤아리지 못합니다
피었다 진 날들,
꽃빛 잊었는지
아니 행복한지
궁금한 그 사람을,
아직도 잊는 중입니다
ㅡ시집『수식은 잊어요』(황금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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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때 우리나라 꽃이 무궁화가 아니라 척박한 산성땅에서도 잘 자란다는 전국산천의 어디에나 피고 있는 진달래꽃이 우리나라 꽃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진달래꽃 하면 누가 생각날까요? 뭐 물어보나마나 ‘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 시작하여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로 끝나는, 만인이 다 아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이지요. 또 그다음에 진달래꽃 하면 생각나는 시는 누구일까요? 많은 시인들이 진달래꽃을 노래했고 참 많이도 쓰여 졌습니다. 직설적이든 은유든 비유든 얼마나 많은 시인들이 진달래, 또는 진달래꽃으로 시를 썼는지 한번 펼쳐봅니다.
동시대에 같이 공부를 한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가슴 한 쪽에 심어져 있는 이은상의 시조...수집어 수집어서 다 못타는 연분홍이/부끄려 부끄려서 바위틈에 숨어 피다./그나마 남이 볼세라 고대 지고 말더라...진달래를 비롯하여 유, 무명의 많은 시인들이 진달래를 빌려서 4.19를 노래했고 사랑과 고향 순수, 조국을 읊었습니다.
진달래꽃/이화영, 진달래꽃/최문자, 진달래/임영조, 참꽃/임영조, 진달래 –419날에/이영도, 진달래/김윤현, 진달래/신경림, 진달래/전연희, 진달래 山川/서지월, 진달래산천/이수종, 진달래꽃/이정록, 진달래/박승옥 등 이 외에도 정말 많은 진달래 시가 있고 또 앞으로도 계속 쓰여질 것입니다.
이 많은 시 중에 진달래 시 한 편을 보탠 이우디 시인의 진달래 시를 봅니다. 물론 제가 진달래꽃을 제일 좋아하고 세상에서 처음으로 안 꽃이기 때문에 ‘진달래’ 라는 제목의 시만 봐도 눈길이 갑니다만 그 보다 이 시를 주목하여 본 것은 이 시가 이번에 새로 나온 <수식은 잊어요> 시집 맨 끝에 실려 있어서 이기도 합니다.
시집이 팔리지 않는 시대라 시인들이 시집을 내면 그동안 빚진 것도 있고 동료 선,후배 시인들에게 품앗이 겸 보내드리고 또 시집을 냈으니 세상에 고하고 싶은데 사 주는 사람도 없고 제 시를 읽어 주십사 하는 의미로 평론가니 이름 꽤나 있다는 시인들에 무작위로 보낸다고도 하는데 어떤 유명 시인은 날마다 우체통에 꽂혀 있는 시를 다 읽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래도 무명시인이라고 해도 보낸 이의 성의를 생각해서 시집 첫 번째 시를 읽어보고 중간쯤 펼쳐서 한번 읽어보고 마지막에 실린 시를 읽어본다고 합니다. 괜찮다 싶으면 나중에 읽어보려고 한쪽에 밀쳐놓지만 그마저도 아니다 싶으면 바로 버린다고 합니다. 이 말은 조급해하지 않아도 좋은 시는 언제 누구 눈에 띄여도 띄인다는 말도 되겠습니다.
시집 한 권을 보는 것도 그렇지만 시 한 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나온 구절과 문장들이 탁 가슴 속으로 들어오면 계속해서 읽을 것이고 중간쯤 내려갔는데도 뭐가 뭔지 어떤 느낌도 없다면 바로 포기하고 읽기를 중단하고 안 읽고 말 것입니다.
누구는 고상하게 시가 지성인의 쌀이니 고급오락이니 떠들기도 하지만 꽤나 유명한 어떤 평론가는 시를 배드민턴이나 탁구, 축구 자전거 운동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 그 이상과 그 이하도 아니라고 시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저도 그 말에 동의하는 것은 저 역시 다른 오락이나 도락보다 시를 보는 즐겁고 시간 보내기에 좋기에 하는 것일 뿐 그냥 시를 보고 있습니다. 또 환경이 시를 많이 볼 수 있는 여건도 한몫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시를 보는 것이지 시가 무슨 거창한 놀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시집이 냄비 받침대로 대용되고 있는 천대 받는 시대에 그래도 시를 쓰는 시인들은 많고 많아 2만 명을 넘어선지 오래되었다고 하는데 그래도 여전히 시를 배우고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많은 오락과 운동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무슨 특별한 매력이 시에 있는 것은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그럼 어떻게 써야 주목을 받을까요...어떤 시인들은 일반인들도 이해가 되는 소통이 되는 시를 쓴다고 하고 또 어떤 시인들은 평론가들이 주목받는 시를 씁니다. 시인들이 어떤 전략으로 어떤 시를 시든 그건 각자 시인들의 몫이고 다시 이우디 시인의 ‘진달래’ 시를 봅니다.
열 손가락 모자라 헤아리지 못합니다
피었다 진 날들,
제목이 진달래인데 처음부터 뭐지 하며 읽어봅니다. 진달래꽃이 피여 있다가 한 열흘쯤 있다가 진다는 것을 저렇게 표현을 한 것인지 아니면 그리움이 많다는 것인지 일단은 뒤이어 읽어봅니다. 물론 진달래꽃의 물리적인 생태를 이야기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시를 과학적인 사실적으로 쓰면 이미 시의 매력을 벗어나니까요.
꽃빛 잊었는지
아니 행복한지
궁금한 그 사람을,
진달래꽃을 보고 생각난 사람이 있었을까요. 진달래꽃을 같이 따먹으며 꽃의 모양과 빛깔에 대해 얘기하고 한 때를 보낸 사람일까요
아직도 잊는 중입니다
추상화 그림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설명이나 해석이 되던가요. 정물화 인물화 풍경화를 보면 그림의 문외한들도 뭐 그냥 내 나름대로 감상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추상화는 도대체 무얼 그렸는지 모릅니다. 미술평론가들의 상세한 해석이나 평을 들어도 때로는 수긍이 갈 때도 있지만 아리송합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있습니다. 어떤 추상 화가는 내 그림에 해석을 하려고 하지 말라 고 했다고 합니다, 즉 그냥 느낌으로만 보라는 것이지요. 시도 그렇습니다. 해석이 안 되고 독해가 안 되는 시가 많습니다. 사실 어떤 느낌도 안 드는 시도 있습니다.
이 시 역시 그림의 추상화처럼 보통의 시의 상식을 뒤엎고 있습니다. 아직도 잊고 잊는 중이라면 진달래꽃의 추억을 공유한 사람을 못 잊고 있다는 것인데 사랑 시 인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애틋함도 연민도 그리움도 없는 어떤 정지되어 있는 상황을 유추할 수 있을 뿐 입니다. 그러나 끝 행으로 하여금 여운은 남습니다. 마치 잊히지 않는 첫사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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