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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곽구영
농부들 모두 떠나고
공무원이 시유지에 씨앗을 뿌립니다
저건 농사가 아니라 행정입니다
울산광역시 중구 태화동 들판
씨앗은 생명이 아니라 관상용입니다
싹이 돋고 보리가 패고
청보리 익어 보리누름이 될 때까지
보리는 일용할 양식이 아니라
이 도시의 풍경일 뿐입니다
종달새 울음도 없이
보리피리 부는 아이도 없이
보리는 거세된 배경입니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로봇처럼 달려갑니다
먼지가 암운처럼 일어납니다
씨앗이 되지 못하는 보리
더운밥이 되지 못하는 보리
무뇌(無腦)의 보리들이 검은 바람에 흔들립니다
우리 시대의 죄가 함께 흔들거립니다
⸺시집『그러나 아무 일 없이 평온한』(시인동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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