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죄 /곽구영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0. 12. 24. 09:08
728x90

 

곽구영

 

 

농부들 모두 떠나고

공무원이 시유지에 씨앗을 뿌립니다

저건 농사가 아니라 행정입니다

울산광역시 중구 태화동 들판

씨앗은 생명이 아니라 관상용입니다

싹이 돋고 보리가 패고

청보리 익어 보리누름이 될 때까지

보리는 일용할 양식이 아니라

이 도시의 풍경일 뿐입니다

종달새 울음도 없이

보리피리 부는 아이도 없이

보리는 거세된 배경입니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로봇처럼 달려갑니다

먼지가 암운처럼 일어납니다

씨앗이 되지 못하는 보리

더운밥이 되지 못하는 보리

무뇌(無腦)의 보리들이 검은 바람에 흔들립니다

우리 시대의 죄가 함께 흔들거립니다

 

 

 

시집그러나 아무 일 없이 평온한(시인동네, 2020)

 

'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화 /문화영  (0) 2020.12.24
보석상가 /전윤호  (0) 2020.12.24
신용불량자, 지구 /곽구영  (0) 2020.12.24
비밀 /박선희  (0) 2020.12.24
좀머 씨는 행복하다 /박해성  (0) 2020.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