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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귀
김명인
떠날 것은 떠나게 하고
남아 있는 것들과 뼛속까지 사무치면
이 바닷가가 적막하다, 먼 데 있어 아득하던
수평선도 눈썹에 와 닿는 것이니
일찍 나온 반달이 구름을 접었다 폈다
파도가 모래톱을 반쯤 입혔다 벗겨놓는다
철썩이는 갈기로 엎어지지만
꺾이지 않는
차고 빛나는 걸신들의 영원
가장 왕성한 탐식으로
몽돌들은 제 살을 긁는 허기와 마주친다
아무래도 이 공복 채울 길 없다
파도가 파도 밖에서 부른다
들키지 않으려고 아귀는
심해 속으로 더욱 깊이 잠수한다
⸺시집『여행자 나무』(문학과지성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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