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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 스토리
최영랑
그의 웃음은 나만 아는 바깥입니다
그 웃음은 가볍고 부드러운 거품이어서
누구에게나 쉬이 얹힙니다
거품 속으로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새롭게 형성되는 그룹들
관계의 밀도가 조밀해집니다
나는 거품의 추종자가 됩니다
그럴 때 내게서도 거품 하나가 피어납니다
거품은 서로에게 섞여 마모될 필요가 없습니다
가까워지는 이마와 이마, 같은 연대기를 만듭니다
이건 목적에 깃든 밀착의 힘
허구와 허구가 만나면
꿈틀거리는 루머들
이야기는 부풀길 좋아해서 터지지 직전까지
자라는 말풍선들
끝없이 이야기의 곁가지가 늘어납니다
복선처럼 바깥에 무지개가 피어나 나는 그만 아찔해집니다
활짝 핀 오후 소문은 절정입니다
터질 생각이 없습니다
거품이 거품으로 목욕을 합니다. 친절한 거품,
그와 나의 은밀한 가능성까지 씻어낼 필요도 없는데
흉터까지 가려줍니다
이제 거품 속 알몸은 내내 안전합니다
―시집『발코니 유령』실천문학,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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