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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문滅門의 위기
김무웅
양지바른 울타리만 골라
여름 바다를 건너던 녹음의 항해
늘 푸른 바다인 줄만 알았는데
제 살을 내어주고 후사를 의탁하던
삶의 고리가 끊겨 간다
누대에 걸친 헌신은 물거품이 되고
세상 변화에 인연의 끈이 위태롭다
오일장에서 신제품을 사오던 날
그 액운의 깊이를 짐작조차 못했다
장갑처럼 손에 끼고
한 쪽은 부드러운 패드, 다른 쪽은 거친 깔깔이
젖어도 썩지 않고
말릴 필요도 없다고
목청을 높이는 바람에 숨도 크게 못 쉬는데
울긋불긋 아크릴 수세미와
스텐 수세미까지 합세한 최후의 한 방
주방을 빼앗긴 수세미
점점 씨가 말라간다
―시집『맥박』(시와표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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