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다시 필사 시

<시>사과, 떨어지다 /고경자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 22.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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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떨어지다

 

고경자

 

 

모든 상황은 이렇게 이해되고 있었어

붉은 전쟁의 시작과 변곡점

어쩌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현실세계에서

발견되는 사과,

그 사과 하나가 떨어졌어

냉큼 줍기에는 체면이 망가질까봐 망서렸어

 

그때 우연히 한 여자가 다가와서

쓱 손을 내밀었어

보기엔 탐스럽고 이 세상의 맛이 아닐 것 같은

욕망의 빨강이

그녀 곁으호 다가왔어

 

내 것이었던 사과,

내 것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던 사과가

다른 여자 손에 들어가고,

더 매력적인 빨강

밤하늘의 별들이 다 떨어져버린

혼란의 밤 속에 불안이 왔어

 

하지만 난 사과가 없고

이제는 다시는 사과를 가질 수 없어

울고 싶었지만 눈물마저 그 여자가 가져가 버린

이런 불편한 관계,

첫째가 아닌 다음에 태어나는

얘들이 가지는 숙명인지도 모르지

세상의 모든 사과가 붉어지고

눈물 꼭지는 꽉 잠겨 돌아가지 않았어

스스로 중력을 잃어버린 오십의 나이에는

사과가 가슴에서 뚝 떨어졌어

 

 

 

시집사랑의 또 다른 이름(시산맥, 2020)

 

20211221332/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