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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떨어지다
고경자
모든 상황은 이렇게 이해되고 있었어
붉은 전쟁의 시작과 변곡점
어쩌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현실세계에서
발견되는 사과,
그 사과 하나가 떨어졌어
냉큼 줍기에는 체면이 망가질까봐 망서렸어
그때 우연히 한 여자가 다가와서
쓱 손을 내밀었어
보기엔 탐스럽고 이 세상의 맛이 아닐 것 같은
욕망의 빨강이
그녀 곁으호 다가왔어
내 것이었던 사과,
내 것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던 사과가
다른 여자 손에 들어가고,
더 매력적인 빨강
밤하늘의 별들이 다 떨어져버린
혼란의 밤 속에 불안이 왔어
하지만 난 사과가 없고
이제는 다시는 사과를 가질 수 없어
울고 싶었지만 눈물마저 그 여자가 가져가 버린
이런 불편한 관계,
첫째가 아닌 다음에 태어나는
얘들이 가지는 숙명인지도 모르지
세상의 모든 사과가 붉어지고
눈물 꼭지는 꽉 잠겨 돌아가지 않았어
스스로 중력을 잃어버린 오십의 나이에는
사과가 가슴에서 뚝 떨어졌어
―시집『사랑의 또 다른 이름』(시산맥, 2020)
2021년 1월 22일 13시 32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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