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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 가지가 흔들릴 때
김분홍
고이는 곳이 많은 엉덩이는 아름답습니다
흔들리는 엉덩이 속엔
산비탈 풀벌레소리가 고이고, 자벌레 걸음이 고이고, 한낮의 하품과 달의 부끄러움이 고인 흔적이 있습니다
말똥구리가 바닥을 말아 올리듯
엉덩이는 공중에서 길을 둥글게 감아올리고
둥근 길 속엔 당신의 달콤함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오후 3시의 엉덩이, 구름의 펑퍼짐한 생각이 내려앉아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벌레들이 생겨나는
엉덩이 위엔
솜털의 띄어쓰기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봉지에 싸여 아우성치던 솜털이 붉게 익어갑니다
솜털 속 벌레들이
빛과 어둠을 갉아먹으며 향기로움을 꿈꾸겠지요
벌레에겐 숱한 솜털의 밤이 있고, 내겐 불면의 밤이 있습니다
나는 매달려 익어가는 벌레의 생각을 솎으려다 그만둡니다 벌레는 나의 생각 속에만 존재합니다
낮의 엉덩이와 밤의 엉덩이는 감정의 깊이가 다릅니다
감정이 깊어질수록
벌레는 번식하고 이별은 껄끄러워집니다
―격월간『시와 표현』(2019, 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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