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모과 혹은 주먹 /윤옥란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4. 26.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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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 혹은 주먹

 

윤옥란

 

 

한 손은 주먹을 움켜쥐고

다른 한 손은 머리를 쓸어 올린 모과나무를 보았다

 

아직 풋내 나는 모과

늦은 밤까지 이런저런 일 겪으며 주먹을 펴지 않았다

 

밤마다 나의 다짐이 모과처럼 단단해져 갈 때

모과의 주먹도 울퉁불퉁 불거져 나왔다

이불 속에서도 주먹을 펴지 않는 내 마음처럼

 

사방에서 날아드는 새들의 소리에도

귀를 닫은 지 오래

날이 가물면 잎 타는 냄새가

모과의 온몸으로 뜨겁게 옮겨 붙었다

 

그럴 때마다 내 상상은 달의 뒷면에서 뒹굴곤 했다

 

불타는 내 생각들이 모과 속으로 스며

내 주먹과 겹쳐졌다

빛이 든 흔적마다 붉다 못해

한쪽이 검어졌다

 

무게의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쿵,

모과의 어깨 한 쪽이 으스러졌다

 

땅도 신음소리를 냈다

 

 

 

―시집『날개는 뒤돌아보지 않는다』(미네르바,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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