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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 혹은 주먹
윤옥란
한 손은 주먹을 움켜쥐고
다른 한 손은 머리를 쓸어 올린 모과나무를 보았다
아직 풋내 나는 모과
늦은 밤까지 이런저런 일 겪으며 주먹을 펴지 않았다
밤마다 나의 다짐이 모과처럼 단단해져 갈 때
모과의 주먹도 울퉁불퉁 불거져 나왔다
이불 속에서도 주먹을 펴지 않는 내 마음처럼
사방에서 날아드는 새들의 소리에도
귀를 닫은 지 오래
날이 가물면 잎 타는 냄새가
모과의 온몸으로 뜨겁게 옮겨 붙었다
그럴 때마다 내 상상은 달의 뒷면에서 뒹굴곤 했다
불타는 내 생각들이 모과 속으로 스며
내 주먹과 겹쳐졌다
빛이 든 흔적마다 붉다 못해
한쪽이 검어졌다
무게의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쿵,
모과의 어깨 한 쪽이 으스러졌다
땅도 신음소리를 냈다
―시집『날개는 뒤돌아보지 않는다』(미네르바,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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