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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선자령
이서화
초겨울 한낮의 선자령 바람을 읽는다
나무들이 모두 바람을 따라가는 곳
빽빽한 바람 속에 몇 그루 발치쯤으로 서 있는 소나무
해마다 조금씩 움직이는지 올해는 유독 바다쪽으로 가깝다
기울어져 있는 것 같고 기대고 있는 것 같다
먼 곳을 어쩌자고 의지할까
툭하면 안개 숨거나 흐린 날씨에 숨는
동해 저 쌀쌀한 면면과 눈 맞았을까
대관령 옛길처럼 구불거리는 마음 들여놓고
험한 거리를 묵묵히 걸어가는 마음이 되었을까
언덕 넘어 북서편 자락으로 몰려간 눈은 바람의 무늬
고랭지 밭고랑마다 눈과 바람이 들어차 있다
모래알 같은 눈발이 매섭게 흐르는 것은 블리자드 같다
모두가 바람을 등지고 빠른 걸음이지만
빼곡한 바람을 분석하는 바람개비만 느릿하다
풍력발전기 기둥 아래
바람의 조리법을 아는 사람들이 모여앉아
바람에 라면을 말아 먹고 소주를 마신다
대관령 양떼목장의 양들은 모두
제 털을 덮고 겨울을 나고 있을 것이고
바람은 풍력발전기에 불어
찌릿찌릿 더 사나운 바람이 될 것이다
ㅡ시집『 굴절을 읽다』(시로여는세상, 2016)
2021년 6월 17일 오전 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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