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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다리* 건너기
홍계숙
발을 헛디디면 그 시절로 돌아갈지 몰라
떨거지 갈가지들 공중을 건넌다 발아래는 물뱀 우글대는 강, 아찔한 침목 위를 네 다리로 건넌다 어떤 시도도 맨 처음은 붉은 법, 왼발을 떼어내 침목 한 칸을 내딛고 왼손을 떼어 한발 앞으로 나아가며 엉금엉금
강을 두고 건너를 가로지르는 철교, 거인처럼 큰 기차가 기적汽笛을 몰고 오기 전, 저 다리를 건너면 어른이 될까
무사히 건넌 몇몇이 바람으로 불어오고 일 년에 몇은 발을 헛디뎌 유실된 소문이 다리 밑을 떠돌았다
어느덧 다리는 길어지고 가까워지고
네 다리가 둘로 진화되도록 나는 아직도 허공을 건너간다 세상은 점점 더 물살 거세지고 경계와 경계를 밟으며 이따금 난간에 비켜서며
시간은 차창 밖 풍경을 철컹철컹 잘라내고
밤이면 악몽으로 실족을 받아내며 건너의 건너를 향해
껍질의 탈락과 우화 그 너머를 꿈꾸며
나를 헛디디면 꿈의 바깥으로 추락할지도 몰라
*기차가 다니던 철교
―『두레문학』(2021년 상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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