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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승
오후부터 내리던 비가 저녁 무렵 거세졌다.
양동이 비가 쏟아지는 베란다 창 저편 언덕 위
아카시나무의 우듬지가 휘청인다.
나무의 실루엣이 휘청이는 게 보인다.
나부끼는 아카시나무의 중간쯤에
까치집도 함께 흔들리는 것이 보인다.
나갈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궂은 날씨에 발이 묶인 사람처럼 나는 어째서
흔들리는 나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걸까.
옻나무 밭을 지키는 것은 장자의 직업이었는데
나는 버티고 서서 아카시나무를 바라본다.
비가 없는 마른날, 바람 없는 날에도
베란다에 서면 눈길은 언덕 위 아카시나무로 향한다.
그러니 뙤약볕에 목덜미를 굽는 것도 나의 일
온통 비를 맞고 서서 뿌리를 적시는 일도 나의 일
바람 속에서 몸부림치며 흔들리는 것도 나의 일이다.
아카시나무를 더듬어보는 일은
어두워오는 저녁의 마음을 보는 일
나는 어쩌다 언덕마루에 아카시나무 한 그루를 심었나.
나는 한 줄기 길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물줄기 너머를 응시하는 폭우 속의 야간 운전자처럼.
ㅡ 『시인수첩』(2021,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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