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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9) / 장애인의 날이 지났지만 - 김갑숙 시인의 ‘수화’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9. 2.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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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9) / 장애인의 날이 지났지만 - 김갑숙 시인의 ‘수화’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9) / 장애인의 날이 지났지만 - 김갑숙 시인의 ‘수화’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9) / 장애인의 날이 지났지만 - 김갑숙 시인의 ‘수화’

 

수화 1
―몸 안의 탄생  

김갑숙

 

내 과부하 된 뇌, 중앙분리대를 넘어온 차에 뭉개지고
뇌 틈에 마모된 라르고의 음률
주름진 혈관을 되감는데
불안한 영혼의 짙은 바다 밑 물빛 목소리는
아가미 찢긴 물고기자리별 속으로 사라진다

내 손바닥 위 우두커니 선 감정 하나
말을 잊은 세상에 나뒹굴고
소리가 갇혀버린 너의 공간
내 몸 속에 자리 잡아

긴 어둠 속을 말없이 걷던 너는 
내 눈물 달여 추출해낸 빛의 결정
나의 뼈마디로 세상을 열자
정화된 혈관 속에 네가
목소리 담아 불쑥 나타난다

눈을 열어 너의 소리에 귀기울여 보라
분홍빛 뇌 사이에 꽂힌, R. 슈트라우스의 가곡 <내일> 
(아무 말 없이 우리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리라) 그러면
내면의 밑바닥 텅 빈 곳에 머물던 너의 몸짓은
죽음의 혈관을 더듬어 창조된 사랑
두 손 안의 붉은 은유
주먹 안에서 돌고 있는 심장 소리
나의 손바닥 위에 올려진 첫 아침을
춤인 듯 깨운다

-『카피라이터의 붉은 의자』(시문학사, 2007)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9) / 장애인의 날이 지났지만 - 김갑숙 시인의 ‘수화’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해설>

지난 20일은 장애인의 날이었다. 장애인들이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기는 참 어렵다. 장애인이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지체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언어장애, 지적장애……. 조현병을 앓는 이는 남에게 큰 해를 주어 사회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 땅에서 장애인은 설 자리가 너무 좁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간간이 수화로 대화하는 사람을 본다. 텔레비전 뉴스 시간에 한쪽 동그라미 안에서 수화로 보도를 하기도 한다. 말을 하지 못하는 이가 전국에 몇 명이 있는지 모르지만 몇 십 만은 될 것이다. 우리가 흔히 ‘벙어리’라고 말하는 언어장애인들은 한평생 답답한 가슴을 부여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과 얘기를 나누려면 수화를 배워야 하는데, 나는 아직 수화를 배우지 못했다. 그 아름다운 손짓언어를. 

김갑숙 시인은 수화하는 이가 이룩해낸 멋진 공연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언어장애인이 손을 움직여 내 의사를 타인에게 전한다. 상대방이 언어장애인이든 아니든 수화로 대답을 한다. 그들은 대화하면서 웃기도 하고 슬픈 표정을 짓기도 한다. 수화하는 이의 손짓을 두고 시인은 “죽음의 혈관을 더듬어 창조된 사랑”이라고 했다. 소리를 내지 않지만 시인은 “주먹 안에서 돌고 있는 심장 소리”를 듣는다. 결국 수화는 “나의 손바닥 위에 올려진 첫 아침을/ 춤인 듯 깨운다”고 했다. 그 춤은 화자를 깨우는 멋진 예술행위다. 네가 손을 움직여 내게 말을 하니 너는 나의 첫 아침을 깨운 것이고, 그것이 또한 춤과 진배없다. “불안한 영혼의 짙은 바다 밑 물빛 목소리”가 “아가미 찢긴 물고기자리별 속으로” 사라졌음을 애통해 한 제2연의 표현도 놀랍지만 말을 못하는 너를 “내 눈물 달여 추출해낸 빛의 결정”이라고 표현한 것은 가히 압권이다. 

손짓언어는 춤과 다를 바 없다. 현대무용이건 고전무용이건 발레건 댄스건 몸을 움직여 자신의 생각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행위인데 “몸 안의 탄생”인 수화 또한 그렇지 않으냐고 시인이 우리게 말해준다.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몸 성한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출처 : 뉴스페이퍼(http://www.news-pap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