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5) / 이웃보다 친한 기계 - 황봉구의 '죽음은 인터넷처럼'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5) / 이웃보다 친한 기계 - 황봉구의 '죽음은 인터넷처럼'.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5) / 이웃보다 친한 기계 - 황봉구의 '죽음은 인터넷처럼'
죽음은 인터넷처럼
황봉구
새벽마다 찾아드는
죽음의 무선신호에
인터넷 메신저를 연결하다
녀석은 언제나 기다리고 있어서
이승의 화면을 열 때마다
활짝 통로를 열어준다
천천히
녀석과의 대화가
문자의 심연으로 빠져들어
허우적허우적
죽음의 늪에 발목까지 잠기면
화면에는 그때서야 삶의 바이러스들이
아우성치며 우리를 훼방 놓는다
히히히, 호호호, 하하하!
동의도 구하지 않고
멋대로 화면까지 꺼버리는
저 지독한 삶의 웜 바이러스들
죽음의 손길은 아픈 듯
꿈을 부수며 나를 내동댕이친다
옆자리
쌔근거리는 숨소리에는
살내음이 가득하고……
—『문학나무』(2004. 겨울)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5) / 이웃보다 친한 기계 - 황봉구의 '죽음은 인터넷처럼'.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해설>
시인이 이 시를 썼던 15년 전에는 ‘인터넷의 시대’ 혹은 ‘가상현실의 시대’였겠지만 지금은 ‘인공지능의 시대’ 혹은 ‘4차산업 혁명의 시대’다. 인터넷 시대가 더욱 발달했으니 더 잘살아야 하는데 왜 우리는 미세먼지로 고통받고 원전과 지진의 상관관계로 고민하고 중국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들어오면 어쩌나 떨고 있나. 인간보다 똑똑한 기계가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지는 않나 보다. 아니, 컴퓨터 인터넷이 우리를 비웃고 있다.
현대인은 이웃이나 동료보다 기계와 더 친하고 기계를 더 신뢰한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 문자가 와 있을 것이다. 시인은 이런 생각을 해본 것 같다. 저승사자는 어떤 식으로 우리를 찾아오는가. 인터넷으로? 그것도 화면으로? “멋대로 화면까지 꺼버리는/ 저 지독한 삶의 웜 바이러스”로? 현대인의 죽음은 인터넷 메신저에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당신이 죽을 확률은? 죽게 되면 그 처리는?
요즈음 부고는 100% 문자로 전해진다. 상주가 침통한 목소리로 부친의 부고를 전하는 일은 없다. 그와 아울러, 컴퓨터와 마주앉아 있을 때 우리는 산 주검이고, 컴퓨터가 꺼져 있을 때 우리는 죽은 목숨일지도 모른다. 인터넷 채팅을 할 때, E-메일을 전송할 때,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낼 때,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을 때, 우리는 살아 있다.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정보통신을 가능케 하는 기계들이 작동을 멈췄을 때, 우리는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한밤중, 화자의 옆자리에는 숨을 쌔근거리며 아내가 잠들어 있고 살내음이 방에 가득한데 말이다. 참으로 많은 사람이 눈만 뜨면 기계 앞으로 다가간다.「죽음은 인터넷처럼」은 기계에 종속되고 만 현대인의 부조리한 삶을 들춰낸 시다.
출처 : 뉴스페이퍼(http://www.news-pap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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