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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되던 날
최정애
아가가 문을 밀고 나오던 날
지구 위에 생명 하나 심은 게 좋아 웃다가
웃음이 눈물이 되는 법 깨달았지요
눈감고도 우유 먹는 게 신기하여
종일 굶은 배가 벌렁벌렁 뛰었구요
배내옷보다도 작은 인형만 한 아가
그 쬐끄만 몸은 우주를 채우고도 모자라
제 주먹만 한 할미 가슴으로 비집고 오데요
꽃물처럼 상큼한 숨결
서걱이는 마음 구석구석 산소가 되어
지구 한 바퀴를 구경시켜 주더군요
꽃술 눈으로 향기를 피우고
젤리 입으로 노래를 부르면서요
안개꽃 다발보다 짧은 키에서
어쩜 그렇게 깊은 생각이 나오는지
조근조근 귓속말 나눌 때
오므린 입이 졸린지
입술을 딱 벌리고 하품을 하데요
그때 내 가슴에서 기쁨 한 덩이 탁 터졌지요
꽃망울 하나가 놀라서 피었구요
-『시현실』(2002.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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