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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9) / 자연의 섭리 - 하린의 ‘이부탐춘’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0. 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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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9) / 자연의 섭리 - 하린의 ‘이부탐춘’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9) / 자연의 섭리 - 하린의 ‘이부탐춘’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9) / 자연의 섭리 - 하린의 ‘이부탐춘’

 

이부탐춘*

하린

 

내가 아는 개들은 집단생활을 한당께 
아래층 발바리를 내보내라고 밤새 
철문을 두드리고 시위를 하는디 
개랑만 함께 사는 주인집 할매는 
개들을 쫓으며 20여 년 과부 생활을 자랑하는 기여 
그라제, 또다시 재방송되는 다큐멘터리여 
청취율에 상관없고 누구나 들어야 하는 눈물의 결정판 
할매의 야그에서 클라이맥스는 아들편이여 
그놈 대학병원 의사로 만들기까정 인생역경은 
하룻밤을 새워도 모자란당께 
그런디 말이여 이사 온 지 일 년이 넘었는디 
주인공들 코빼기도 안 뵈는 기여 
손자 놈이 죽은 영감을 닮았대나 뭐래나 

암내를 풍기는 작은 발바리에 
덩치 큰 동네 개들이 벌이는 구애작전이 볼 만허당께 
날이 샐 때까지 할머니는 쫓고 개들은 다시 오고 
할매 그냥 내보내 주지 그라요? 
저 많은 놈을 다 상대하란 말여! 
개한테는 봄인디 무슨 심뽄지 모르것당께 
좌우간 아래층 두 여자 정조관 한 번 대단혀 

* 이부탐춘(嫠婦耽春):혜원 신윤복의 풍속화.

-『시와 인식』(2009. 봄)

 

<해설>

신윤복의 풍속화 중에 소복을 입은 여인과 그녀의 몸종이 마당에서 짝짓기를 하는 개와 즐겁게 노니는 참새를 쑥스럽게 미소 지으며 보는 것이 있다. 여인은 웃음을 머금고 있고 몸종은 여인의 그런 표정이 영 못마땅해 나무라듯이 여인의 허벅지를 꼬집고 있다. 

때가 되면 교미를 해 번식하는 것이 생명체의 섭리인데 사투리가 억센 이 시의 화자는 생명체의 섭리에 반하는 할머니가 여간 얄미운 게 아니다. 동네 할머니가 20여년 과부로 살아오면서 지킨 정조관념 때문일까, 발바리 암캐를 밖으로 내보내지 않자 동네 청장년 수캐들이 매일 난리를 친다. 할머니의 아들은 대학병원 의사인데 이 동네에 코빼기도 안 보인다. 죽은 남편을 닮았다는 손자도 이웃인 화자는 본 적이 없다. 할머니의 정조관념은 자신과 발바리를 다 청상으로 만들고 있고, 이것은 신윤복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인간이 자연을 거스르면 안 된다는 생각은 시인의 생각일까, 신윤복의 생각일까. “할매 그냥 내보내 주지 그라요?” “저 많은 놈을 다 상대하란 말여!” 화자와 할머니의 재미있는 대화가 이 시를 살리고 있다. 스스로 그러한 자연을 그대로 두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 것을.

출처 : 뉴스페이퍼(http://www.news-pap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