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1) / 북녘의 어머니 - 함동선의 ‘마지막 본 얼굴’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1) / 북녘의 어머니 - 함동선의 ‘마지막 본 얼굴’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1) / 북녘의 어머니 - 함동선의 ‘마지막 본 얼굴’
마지막 본 얼굴
함동선
물방앗간 이엉 사이로
이가 시려 오는 새벽 달빛으로
피란길 떠나는 막동이 허리춤에
부적을 꿰매시고 하시던 어머니 말씀
어떻게나 자세하시던지
마치 한 장의 지도를 들여다보는 듯했다
한 시오리 길
산과 들판과 또랑물 따라
나루터에 왔는데
달은 먼저 와 있었다
어른이 된 후
그 부적은
땀에 젖어 다 떨어져 나갔지만
보름마다
또랑물의 어머니 얼굴 두 손으로 뜨면
달이 먼저 손짓을 한다
—『한 줌의 흙』(시문학사, 2012)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1) / 북녘의 어머니 - 함동선의 ‘마지막 본 얼굴’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해설>
내게 시 창작을 가르쳐주신 스승은 서정주와 구상 시인이었다. 시문학사는 함동선 선생한테, 시론은 김은자 선생한테 배웠다. 오늘이 스승의 날이니 스승의 시를 읽는다.
시인의 고향은 황해도 연백군 해월면 해월리다. 어머니는 피난을 떠나는 막내아들의 허리춤에 부적을 꿰매어 주었다. 그러면서 이것저것 당부를 했을 것이다. ‘자세한 것’이 집으로 오는 길인지 세상살이의 방법인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헤어진 것이 영영이별이 되었다.
시인의 어느 글을 보면 한국전쟁 중에 강화도에 가서 미군 탱크부대에 들러 망원경으로 고향 쪽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 동쪽 끝의 집 부엌문으로 흰옷을 입은 이가 드나드는 것을 본다. 그분이 어머니가 아니었다고 해도 흰 옷 입은 영상이 한평생 시인의 뇌리에 어머니로 각인되어 잊히지 않는다고 한다.
보름마다 또랑물에 비치는 것은 둥근 달인데 그것은 어머니의 얼굴이다. 어머니의 마음이다. ‘마지막 본 얼굴’은 고향을 떠나오던 날의 그 보름달이다. 어머니의 환한 얼굴이다.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고향은 전쟁 후에 미수복지구가 되어 가볼 수 없게 되었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어머니를 그리워하면서 시인은 어언 산수(傘壽)의 나이를 넘겼다. 남북관계가 언제쯤 해빙이 될까.
출처 : 뉴스페이퍼(http://www.news-pap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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