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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2) / 제일 큰 아픔과 기쁨 - 김정인의 ‘일출’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0. 15.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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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2) / 제일 큰 아픔과 기쁨 - 김정인의 ‘일출’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2) / 제일 큰 아픔과 기쁨 - 김정인의 ‘일출’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2) / 제일 큰 아픔과 기쁨 - 김정인의 ‘일출’

 

일 출 

김정인 

 

분만실 창을 가린 블라인드 사이로
수평선이 여러 겹 겹쳐 있다
나는 등 뒤로 딸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어둠을 찢고 나오는 우렁찬 
햇살 기다리고 있다
해가 내게 당도하려면 울음의 강을 건너야 한다는 생각

산모는 해를 밀어낼 통로를 여느라 제 살 찢는데
혈압 체크하던 간호사는 갈 길 멀었다는 듯
수액 빠진 링거 다시 갈아 끼운다
견딜 수 없이 조여드는 가슴
딸과 나의 공통분모는 
탯줄의 출구를 묶고 번진 피 아물기를 기다리는 일

안이 젖은 고무장갑 뒤집어 말리듯
항문으로 온 힘 밀어내는 소리 들리는데
‘머리가 3센티 보여요!’
떠오르는 그 해 눈부셔 눈부셔 차마 바라보지 못하다가
으앙, 터진 울음 받아 올리다

―『유심』(2011, 3/4월호)

 

<해설>

시적 화자는 산부인과병원에 와서 이제 막 출산을 하려는 산모의 친정어머니다. 화자는 분만실에 와서 딸의 출산 과정을 노심초사 지켜보고 있다. 자신이 과거에 겪었던 그 엄청난 아픔을 딸이 눈앞에서 겪고 있으니 얼마나 마음이 짠할까. 무통분만도 있다고 하지만 산고는 여성만 겪는 아픔이다. 그 결과로 태어나는 생명은 빛이다. 김정인 시인은 일출 장면과 출산의 과정을 절묘하게 대비하면서 시를 전개해 나간다.

해가 떠오르는 것도 자연의 이법이고 산모가 아기를 낳는 것도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랴. 새 생명을 “어둠을 찢고 나오는 우렁찬/햇살”로 인식한 것이나 “해가 내게 당도하려면 울음의 강을 건너야 한다는 생각”이라는 진통에 대한 표현이 아찔하다. 분만실에서 산모가 내지르는 신음소리! 산모와 신생아는 ‘고통’을 통해 맺어져 있다. 

우리가 정동진이나 성산 일출봉 등에 해맞이를 하러 가는 이유가 있다. 새해에 처음으로 떠오르는 해를 보며 지난해의 허물을 씻고 새롭게 복을 비는 송구영신의 마음으로 일출이 보기 좋은 곳으로 몰려가는 것이다. 신생아의 탄생도 그에 못지않게 엄숙하고 가슴 벅찬 시간이다. 이 세상을 비출 햇덩이로 생각한 시인 자신이 아기를 낳아본 존재다. 특히 “탯줄의 출구를 묶고 번진 피 아물기를 기다리는 일”을 딸과 나의 공통분모라고 하는 제2연의 말미에 이르면 모성의 위대함 앞에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다. 딸은 항문으로 온 힘 밀어내며 소리를 지르고, ‘머리가 3센티 보여요!’ 하고 누군가 소리친다. 생명이 태어나는 것도 아침이 오는 것도 기적이다. 매일 찬란한 빛을 뿌리며 동쪽 하늘에서 해가 떠오른다. 화자는 “떠오르는 그 해 눈부셔 차마 바라보지 못하다가” 마침내 “으앙, 터진 울음 받아 올린다”. 세상을 밝힐 해가 두둥실 떠오른 것이다. 

출처 : 뉴스페이퍼(http://www.news-pap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