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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5) / 산업화의 그늘 - 윤한로의 ‘분교 마을의 봄’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0. 21.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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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5) / 산업화의 그늘 - 윤한로의 ‘분교 마을의 봄’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5) / 산업화의 그늘 - 윤한로의 ‘분교 마을의 봄’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5) / 산업화의 그늘 - 윤한로의 ‘분교 마을의 봄’

 

분교 마을의 봄

윤한로

 

우리 분교 마을엔
산 너머 너머 언니가
가는 체로 쳐 보낸 
고운 바람

사택 울타리엔 
노란 봄

먼 산엔 
붉은 봄

하늘엔 
뻐꾹 봄

손등엔 
쓰린 봄

내 마음엔 
산 너머 너머 언니가
튼 손 씻어주던
아직도 작년 봄
                                     
―<조선일보>(1981. 1 5) 

 

<해설>

도시로 떠나간 언니가 올해엔 왜 오지 않는 것일까. 분교가 있는 마을이니 산간벽지다. 작년 봄에는 언니가 와서 화자의 튼 손을 씻어주었는데 올해는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어도 오지 않는다. “가는 체로 쳐 보낸/고운 바람”은 지극히 시적이다. 비유가 눈부신데, “손등엔/쓰린 봄”에 이르면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준다. 산 너머 너머로 간 언니가 올해에는 오지 않으니 어린 동생은 슬프고 서럽다.

우리나라의 1960~70년대는 이른바 ‘개발연대’로, 시골의 많은 언니와 오빠, 누나들이 도시의 공단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간 때였다. 공장으로만 간 것이 아니다. 버스차장이 되기도 했고 작부나 창녀로 전락하기도 했다. 남자들은 대개 공장이 아니면 건설현장으로 갔고 트럭을 몰기도 했다. 1970년 봉제공장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자살사건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있었으니, 지켜지지 않는 근로기준법이었다. 그러니까 이 동시는 사실 동심의 아픔과 가족의 해체를 노래한, 지극히 현실참여적인 시였다. 게다가 1981년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이었으니 주제나 발표시기로 보아 논란이 될 수 있었는데 다행히도 그냥 넘어갔다.

시인은 대학에 아주 오래 다녔고, 고등학교 교사가 되었고, 천주교인이 되었다. 시는 발표하지 않은 채 세월을 계곡물처럼 흘려보내더니 2015년, 등단 34년 만에 첫 시집 『메추라기 사랑 노래』를 펴냈다.

출처 : 뉴스페이퍼(http://www.news-pap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