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7) / 유머 만발 - 박미산의 ‘대머리 박홍조 씨와의 화투치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7) / 유머 만발 - 박미산의 ‘대머리 박홍조 씨와의 화투치기’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7) / 유머 만발 - 박미산의 ‘대머리 박홍조 씨와의 화투치기’
대머리 박홍조 씨와의 화투치기
박미산
부챗살처럼 펼쳐든 패를 읽는다
어이쿠, 박홍조 씨 오셨네
엄마가 매조를 내리친다, 찰싹
경로당 화투 치냐?
엄마의 재촉에
에라, 어차피 효도 화투인데
껍질을 남기고 알맹이를 가져온다
내가 패를 미처 뜨기도 전에 엄마는
흑싸리부터 친다
따닥 새들이 찰싹 붙는다
싹쓸이한 화투판
아버지 보우하사 엄마 날이네
판이 끝날 때마다
똥이 왔다 간다
엄마 앞에는 파란 돈이 수북하고
홍조 띤 엄마 얼굴 위로
팔공산이 떴다
껍질만 먹고 알맹이를 남긴 엄마
화투패가 잦혀지며
네 엄마 저세상 갈 때
좋은 화투목 열 개쯤
관에 넣어주라던 박홍조 씨
번쩍, 광을 내며
판에 들어온다
-『문학나무』(2009. 겨울)
<해설>
대머리 박홍조 씨는 화자의 아버지다. 화투만 쥐면 엄마는 신바람이 난다. 딸까지 오게 해 화투판을 펼친다. 화자는 껍질을 남기고 알맹이를 가져오는데 엄마는 껍질만 먹고 알맹이를 남긴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하염없이 퍼주고 세상의 많은 딸은 염치 좋게 가져가기만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어느덧 엄마 앞에 파란 돈이 수북하게 쌓여가고, ‘효도화투’의 결과 “홍조 띤 엄마 얼굴 위로/팔공산이” 뜬다. 이렇게라도 엄마의 기분을 맞춰주려는 가족의 마음이 독자의 마음을 짠하게 한다.
이 시의 재미는 은유에 있다. 시행 하나하나가 돌려서 하는 말인데 그것이 우리말의 독특한 재미이기도 하다. 대머리 박홍조 씨가 “번쩍, 광을 내며/판에 들어온다”는 결구는 이 시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마지막에 이르러 시를 확실히 빛냈기 때문에 이를 가리켜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고 하고 싶다.
출처 : 뉴스페이퍼(http://www.news-paper.co.kr)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 > 우리 말♠문학 자료♠작가 대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9) / 육체와 정신 - 최동호의 ‘해골통 화분’ (0) | 2021.10.25 |
---|---|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8) / 세상의 근원 - 김나영의 ‘어느 섹스에 대한 기억’ (0) | 2021.10.25 |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6) / 물과 여성성 - 문정희의 ‘물을 만드는 여자’ (0) | 2021.10.21 |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5) / 산업화의 그늘 - 윤한로의 ‘분교 마을의 봄’ (0) | 2021.10.21 |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4) / 저 정치가놈들! - 박병순의 ‘그대들 한 솥에 녹여’ (0) | 2021.1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