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6) / 물과 여성성 - 문정희의 ‘물을 만드는 여자’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6) / 물과 여성성 - 문정희의 ‘물을 만드는 여자’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6) / 물과 여성성 - 문정희의 ‘물을 만드는 여자’
물을 만드는 여자
문정희
딸아, 아무데나 서서 오줌을 누지 말아라
푸른 나무 아래 앉아서 가만가만 누어라
아름다운 네 몸 속의 강물이 따스한 리듬을 타고
흙 속에 스미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아라
그 소리에 세상의 풀들이 무성히 자라고
네가 대지의 어머니가 되어 가는 소리를
때때로 편견처럼 완강한 바위에다
오줌을 갈겨주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그럴 때일수록
제의를 치르듯 조용히 치마를 걷어올리고
보름달 탐스러운 네 하초를 대지에다 살짝 대어라
그리고는 쉬이쉬이 네 몸속의 강물이
따스한 리듬을 타고 흙속에 스밀 때
비로소 너와 대지가 한 몸이 되는 소리를 들어 보아라
푸른 생명들이 환호하는 소리를 들어 보아라
내 귀한 여자야
-『문학사상』(2001. 8)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6) / 물과 여성성 - 문정희의 ‘물을 만드는 여자’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해설>
유교의 완고한 이념이 사회체제를 지배한 조선조 500년 동안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남존여비니 여필종부니 하는 한자성어가 왜 만들어졌겠는가. 부부유별이니 거안제미(擧案齊眉)니 하는 한자성어도 여성의 지위가 남성보다 한참 낮았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근대화가 된 이후로도 우리는 남아선호사상을 버리지 못했다. 이 땅의 수많은 할머니들은 자신이 여성이면서도 손녀가 태어나면 내심 서운해 했다. 여자로 살아왔기에 한스런 자신의 생을, 대물림하게 된 것이 안타까워 서운해 한 면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문정희 시인은 세상의 모든 딸에게 당당하게 살아가라고 외친다. 서서 오줌을 누는 것은 자랑스럽고 앉아서 오줌을 누는 것은 남부끄러운 일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여성은 자궁을 지닌 존재이기에 거룩한 땅, 바로 대지모신(大地母神)과 동격이다. 자궁은 양수로 가득 차 있다. 태아가 양수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듯이 비가 내려야 세상의 식물이 생장할 수 있고, 식물이 자라야 동물이 살아갈 수 있다. “네 몸 속의 강물이/따스한 리듬을 타고 흙 속에 스밀 때/비로소 너와 대지가 한 몸이 되는 소리”에는 여성이라면 마땅히 자기정체성을 확실히 알고 살아가야 한다는 시인의 강렬한 소망이 담겨 있다. 그래야지만 푸른 생명들이 환호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법, 그만큼 귀하고 귀한 존재인 여성이 업신여김을 받아서는 안 된다. 물을 만드는 여자는 세상을 만드는 여자요 생명을 만드는 여자다. 성차별이 없는 사회가 제대로 된 민주주의 사회다.
출처 : 뉴스페이퍼(http://www.news-pap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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