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감상해 보자

나무들이 말했다 /정혜숙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0. 2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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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이 말했다

정혜숙


초록이 야위어 하마 핼쑥하겠다
에움길에 만났던 그늘 깊은 비수구미
저녁이 빨리 온다고
나무들이 말했다

어깨를 치고 가는 바람의 농담과
적막도 아랑곳없이 피고… 또 피던 꽃들
산목련 어깨 너머로
드문드문 구름 몇 점

그날 이후 길 위에서 자주 서성인다
음정을 잃은 새처럼 간혹 목이 메고…
걸어서 닿지 못하는
영영 초고(草稿)인 땅



ㅡ『시조미학』(2020,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