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수습사원 재단사 /김예강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1. 6.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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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사원 재단사 

 

김예강

 

 

잘린 천 조각들이 수생식물의 잎 같다

바닥에 떠다닌다.

그는 자르면서

잘라내면서 소매를 단다

가윗날이 스치자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고 달아난다

잘려나간 천 조각들이

재생된 꼬리를 흔들며 풀밭으로 숨어든다

날개가 될지도 모르는

추락이 시작할지도 모르는 커버

여기 한 점에서 길들은 끝나고 시작한다

그가 요청받은 상의가 완성되어 간다 이 바닥은 처음이다

옷감을 커다란 탁자 위에 반듯하게 펴서 올려놓으면

도마뱀은 정체를 숨기고 가만히 기다린다

덥석 손이 가고 재빠르게 달아나는 도마뱀

연못 속으로 도마뱀은 사라졌을까

그는 검은 옷을 입고 출근한다

빨주노초파남보 색들이 잠자고 있는 검은 색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을 지켜주는 검은 옷은

평안하다 빛들이 쉬고 있는 검은 옷

3개월 수습사원인 K

파산했고 혼밥하는 원룸창가에 초록화분이 자란다

수생식물을 배 위에 올려놓고 연못이 키우고 있다

바깥은 춥고 안보다 따스하다.

그는 그림을 그리다 잠이 든다

어느새 머리에 5cm 돋아난 새싹이 자란다

입을 벌려 본다 기뻐하는 사람처럼,

다리는 얼굴에 붙어서 작아지고

두 팔도 얼굴에 붙어 작아진다,

무엇에 경이를 드리는 듯

무릎을 구부리고 식물 앞에 쪼그리고 앉는다.

다른 무엇이 되려고 한다

 

 

 

―『시와사상』(2021,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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