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내가 울어야 할 때 누가 대신 울어주는 건 더 아파요 /유안나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1. 21.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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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울어야 할 때 누가 대신 울어주는 건 더 아파요

 

유안나

 

 

밖에는 모래바람이 불고

안에도 찬바람이 불었어요

눈을 비비고 돌아서면

거친 세월도 지나가지요

 

모래에 대해 생각해 봤어요

모랜들 날리고 싶겠어요

사막의 등뼈라도 되고 싶겠죠

 

우리 집 베란다엔 그늘만 먹는 식물이 있어요

햇빛을 양보하는 식물이라

내가 고백을 많이 하죠

 

어떤 식물은 창문을 열어 놓으면

입을 벌리고 모래를 먹어버리는데요

나는 그게 싫어요

내가 그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하니까요

내가 울어야 할 때 누가 대신 울어주는 건 더 아파요

 

가족은 그런 건가 봐요

모래바람을 먼저 마셔버리는 것

그걸 보는 사람은 어쩌라고요

 

무늬뿐인 잠자리 날개나

구멍뿐인 새의 가슴뼈는 가벼워서 좋을까요

 

누군가를 바라보다 다 닳아서 그렇겠죠

그러면 영혼까지 가벼울까요

그래서 우리 엄만 꿈에 안 오시나 봐요

 

 

ㅡ『시산맥』(2021,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