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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의 습관
마경덕
주름 많은 여자가
주름치마를 입고 거울 앞에 서 있어요
얼굴을 마주하면 불편한 거울과
솔직해서 속상한 여자의 사이에 주름이 있습니다
한때 미모로 주름잡던 여자는
두 손으로 구겨진 얼굴을 펴고
거울은 한사코 나이를 고백합니다
수시로 양미간에 접힌 기분은
흔적으로 남았습니다
주름진 치마는 몇 살일까요
저 치마도 찡그린 표정입니다
치마는 주름 이전만 기억하고
얼굴은 왜 주름 이후만 기억하는 걸까요
거울처럼 매끈해지려고 여자는
굳어진 표정을 마사지로 수선 중입니다
접혀서 아름다운 건
커튼과 꽃잎, 프릴과 아코디언, 사막의 모래물결, 샤페이, 기다림을 꼽는 손가락ⵈ
거울이 겉주름을 보여줄 때 속주름은 더 깊어집니다
여자와 거울
둘의 관계는 쉽게 펴지지 않아요
양미간을 찡그리는 습관보다
거짓말을 못하는 거울의 습관이 더 무섭습니다
―계간『바라만 봐도 탑이 되는』(2021,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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