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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회 중앙시조대상] 시조는 생물체, 내게 말을 걸어옵니다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2. 16.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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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회 중앙시조대상] 시조는 생물체, 내게 말을 걸어옵니다

 

중앙시조신인상

 

그 겨울의 뿔
-김양희


1
까만 염소에 대한 새까만 고집이었다
힘깨나 자랑하던 뿔에 대한 나의 예의
어머니 구슬림에도 끝내 먹지 않았다

 

염소의 부재는 식구들의 피와 살
살 익은 비린내에 입 코를 틀어막았다
엊그제 뿔의 감촉이 손바닥에 남아서

 

2
그 겨울 식구들은 감기에 눕지 않았다
고집을 부리던 나도 눈밭을 쏘다녔다
염소의 빈 줄만 누워 굵은 눈발에 채였다

김양희

시간은 어길 수 없는 완전체입니다. 어떠한 압력에도 구부러지거나 늦춰지지 않습니다. 총량의 법칙이 시간에도 적용됩니다. 이 법칙을 이해하고 충분히 누리다 보니 시조를 만지는 손길이 낯섦에서 익숙함으로 차차 바뀌었습니다.

 

2021년은 가장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그동안 시조를 쓰며 한 계단씩 오르고 있었다면 이번 상은 단번에 몇 계단을 뛰어오른 느낌입니다.

 

시조를 대하는 자세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지금까지 시조가 종이에 쓰인 활자였다면 이제 살아 움직이는 생물체로 다가옵니다.

 

처음에는 감정이 말을 걸었지만, 시조가 말을 걸어오기도 합니다. 말뿐만 아니라 어서 깨어나라고 후려치거나 일어서라고 호통을 치기도 합니다. 그때는 시조가 하자는 대로 합니다.

 

시조 창작에 매진합니다. 많이 쓰고 많이 버리고 완성하고, 다작이 좋은지 과작이 좋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무작정 미친 듯이 쓰는 일에 열중합니다. 순간의 감성을 붙잡아 기록하고 그 기록에 기대어 하고 싶은 말을 합니다.

 

시조 창작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내 안에서 꿈틀대는 무언가를 밖으로 내보낸다는 것의 즐거움을 압니다. 언제나 처음인 듯 씁니다.

 

이 매력적인 시조, 더욱 천착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셔서 고맙습니

다.

‘말’의 이중적 의미 활용해 시조미학 펼쳐

 

중앙시조대상·신인상 심사평

 

이번 제40회 중앙시조대상 심사에는 두 분의 선고위원의 손을 거쳐 여러 시조시인들의 근작들이 올라와 있었다. 이미 우리 시조시단의 중견 혹은 중진들인지라, 이분들 작품은 완결성과 미학적 품격에서 각별한 성취를 보이고 있었다. 이분들의 빼어난 가작들을 윤독해가면서 심사위원들은 수상작 대상을 좁혀갔다.

 

심사위원들은 그 가운데 손영희의 단단한 심미적 표상과 진정성의 세계에 후한 평점을 부여하였고, 결국 새로운 언어 방식과 속 깊은 진정성을 구비한 손영희의 시세계에 공감하면서 그의 ‘고비, 사막’을 수상작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이 시편은 ‘말’의 이중적 의미(言/馬)를 폭 넓게 활용하면서 ‘시쓰기’의 한 생이 어떤 존재론적 경이감과 난경(難境)을 동시에 가지고 있음을 고백한 명편으로 다가왔다. 손영희 시조미학의 한 진경이 거기 펼쳐져 있었다. 다른 해에 비교해보아도 손색없는 수상작이라고 생각된다.

 

신인상 부문에서는 각축이 심했는데 등단 10년 미만 시인들을 대상으로 검토한 결과 심사위원들은 올해 신인들의 성취가 남달랐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 가운데 김양희의 ‘그 겨울의 뿔’이 선정되었다. 그동안 김양희 시편은 투명한 언어와 경험의 결속으로 우리 시조시단에 신선한 충격을 부여해왔다. 그런 그의 필법이 유장한 흐름으로 이어지면서 가편들을 쏟아냈는데 이번 수상작은 이러한 체험적 구체성과 생명 지향의 사유를 결합하여 우리 시대의 지남(指南)이 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대상과 신인상 수상을 축하드리면서, 두 분 시조시인의 새로운 정진을 마음 모아 부탁드린다.

 

◆심사위원=백이운·이달균·유성호(대표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