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기우뚱과 실금을 모셔두고 /공광규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2. 28.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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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뚱과 실금을 모셔두고

 

공광규

 

 

청양 삼대한약방에 들렀다가

아랫배가 볼록하게 부른 오래된 백자 술병과

실금이 간 조선백자 접시를 얻었다

 

둥근 배 한쪽이 변색된

기우뚱한 균형과 검은 실금에 한참 눈길을 주자

주인인 종금 형이 신문에 싸준 것이다

 

집으로 모셔오는 내내

기우뚱과 실금을 아쉬워하다 곧 잊어버리고

기우뚱한 몸과 실금이 간 마음들을 생각했다

 

몸이 기우뚱한 여자와 사는 선배도 생각나고

내가 모르는 어떤 일로 마음에 금이 가

먼 바닷가 고양이와 사는 여자도 생각났다

 

기우뚱한 둥근 배와 실금이 다치지 않도록

나는 가만히 포장지를 풀고 먼지를 닦아낸 뒤

책상 옆 가까이 모셔두기로 했다

 

아주 먼 옛날

내 아이를 갖고 다투다 떠났을 것만 같은 여자와

내 슬픔의 근원을 종종 대어보기로 했다

 

 

 

ㅡ『시산맥』(2021,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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