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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터를 사랑이라고 부르는 이유
김양숙
바람이 여자의 몸을 다녀갈 때마다 옹이를 낳았다
옹이에게 죄는 일용할 양식이다
죄를 받아먹으며 자란
섬
그 섬
그 섬에서 빵 대신 사랑을 목으로 넘기며
꺼이꺼이 우는 사내와
녹슨 죄를 조금씩 받아 마시면서
사내의 신전이 되고 싶었다
꽃의 심장을 배회하던 많은 날들
그때마다 바람은 내상을 입었다
내장에서 꿈틀거리는 죄의 마디들을 잘라내고
유통기간을 수정하며 견뎌온 꽃의 심장을 갈아 끼웠다
좁은 창으로 봄날 같은 기억이 한 줄기 들어오면
기적은 멀리 내륙으로 소리를 흘리며 가고
낮은 가로등이 졸고 있는 골목과 작은 성당이 있는 마을
고해소 앞에서 바람의 행적을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일요일
엿새 치의 사랑을 좁은 창구 안으로 쏟아놓고 우는
사내의 등이 희미하게 저물어 갔다
바람이 다녀갈 때마다 함께 녹슬어 가는 목구멍을 가진 여자
숨죽이며 웅크린 신전을 바라보다 저만의 적막에 창을 낸다
ㅡ시집『흉터를 사랑이라 부르는 이유』(시와산문문학회,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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