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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국
한상림
누구도 그녀를 참꽃이라 이름 부르지 않았다
배고픔 대신 씨받이로 들어와
그늘 밑에 몰래 꽃 피워
맺은 열매는 안주인에게 빼앗겼을 뿐,
오남매 핏덩이들은 영문도 모르고
엄마를 작은엄마라 불렀다
한집 살면서 등 한번 펴보지 못하고
뒷방에서 살아야 했던 그녀와
다섯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둥지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감시하고 감시받으며 평생을 살았던 그녀들
모두 세상에 헛발 딛고 살았던 건 마찬가지다
남편 세상 떠난 후
아이들 하나둘 둥지 틀어 나간 빈 둥지에서
형님, 동서 서로 의지하며 헛꽃을 피우더니
한 송이 산수국으로
보라색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다
―『모던포엠』(2022,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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