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마스크 안의 기도
조창환
세상 퀴퀴한 냄새로 가득 찼으니 코 가리게 하시고
세상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찼으니 입 가리게 하시고
뭉쳐서 못된 짓하니 흩어져 살게 하시고
밖에서 남 해코지할까 봐 나가지 못하게 하시니
고맙습니다, 하느님
눈 가리지 않아 소경 만들지 않으시고
귀 막지 않아 귀머거리 만들지 않으시고
숨구멍, 똥구멍, 막지 않아
아주 명줄 끊어놓지는 않으시니
고맙습니다, 하느님
살아보겠다고, 마지막 날까지 살아보겠다고
오늘도, 내일도, 또 그 다음날도
그악스럽게 버텨내는 저 얼굴들
독하게 버텨내는 이 세상을
용서해주시니 황송합니다
멀리 계셔서 지금 안 보이고
오래 쉬셔서 오늘도 주무시는 줄 알았는데
아주 인연 끊으시지는 아닌 것 이제 깨달았으니
용서해주소서, 하느님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을 모르옵니다
ㅡ시집 『나비와 은하』 (도훈출판사, 2022)
'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옥수수 껍질을 벗기며 /송희옥 (0) | 2022.04.14 |
---|---|
오랜 벗에게서 /류흔 (0) | 2022.04.12 |
봄은 상처로 핀다 /이이화 (0) | 2022.04.09 |
몇 개의 발화 /최문자 (0) | 2022.04.08 |
처음 접시 /최문자 (0) | 2022.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