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읽고 -수필

다람쥐의 겨울 창고/김동호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0. 6. 14.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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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의 겨울 창고/김동호

 

 

 

다람쥐의 겨울 창고를 가보았다
도토리 99개 개암 32개 밤 17개 ----

 

이상하다
온 산이 제 것인데
왜 그렇게만 갖다 놓았을까

 

나같으면
고소한 개암 300개
달콤한 밤 200개
쓰고 떪은 도토리는 0개

 

그렇게 갖다 놓았을 것 같은데

 

 

 

문학과창작 97년3월 

 

 

 

청설모와 영역이 겹쳐 그 수가 점점 줄어간다는 다람쥐. 영역싸움에서 밀려서일까요. 사람들이 도토리를 주워가 먹이를 빼앗겨서일까요. 사람을 보면 도르르 도르르 도망을 가다가 돌담불에 앉아서 앞발을 들고 비비던 앙증맞은 모습을 요즘은 잘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등산을 가다가 한 번씩 마주치면 무척 반가워 얼른 디카를 들이밀어보지만 귀하신 몸이라고 사진촬영을 잘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필요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저 바닥에 뒹구는 돌멩이 하나에도 그 역할이 있듯 가을철 다람쥐가 땅 속에 저장해 놓은 도토리는 먹이가 부족한 봄철에는 멧돼지의 먹이가 되기도 하고 용케 먹이가 되지 않는 몇몇은 싹을 틔워 숲의 일원으로 성장해서 애벌레를 키우고 새를 키우고 열매를 맺어 다람쥐를 먹여 살립니다. 또 싹을 틔우지 못한다 해도 거름으로 돌아가 숲의 자양분으로서 그 본분을 다 합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한동안 가보지를 못했지만 제가 사는 동네에는 걸어가도 멀지 않는 곳에 민주4.·19국립묘지가 있습니다. 산책하기도 좋아 계절에 관계없이 자주 가보는데 그곳에는 붉은배롱나무꽃이 나무백일홍이라는 이름처럼 끊임없이 피고 집니다. 배롱나무꽃은 꽃 하나 하나가 오래가는 것이 아니라 작은 꽃들이 계속해서 새로운 꽃을 피워낸다는데 민주주의 붉은 피처럼 피어나는 배롱나무꽃이 시들어가면 시간에 쫓기는 매미는 더 급살맞게 울어대고 여름도 막바지에 이릅니다.

 

막바지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면 다람쥐도 바빠지겠지요. 볼 탱탱히 도토리를 잔뜩 집어넣고 여기저기 숨기려 다니기 바쁘겠지요. 그런데 다람쥐가 욕심을 부린다고 부렸는데 창고에는 도토리 99개와 개암 32개, 밤 17개밖에 안 되는군요. 나 같으면 고소한 개암은 3000개, 달콤한 밤은 2000개쯤 그리고 도토리도 갈아서 묵 해먹게 들고 올 수 있을만큼 가져올 것 같은데 그럼 양심에 좀 찔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