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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상사(腹上死)/이덕규
쟁기질하던 낡은 경운기 한 대가 보습을 흙 속에 박은 채, 밭 가운데 그
대로 멈춰서 있다
평생 흙 위에서 헐떡거리다가
한순간 숨이 멈춰버린 늙은 오입꾼처럼
평소 그에게 시달렸던 잡초들 우북히 달라붙어 그를 헐뜯는 동안
마지막 남은 양기를 한끝에 모아
땅속 깊숙이 쥐어짜 넣듯 일의 뒤를 즐기고 있다
어디든 오래 묵어 자빠진 비알 밭의 속살에 탱탱하게 선 날을 밀어넣
으면
고압 전류에 감전된 짐승처럼 심장이 터져라 부르르 떨며 달려가던,
그가 지나온 이랑마다 푸른 정전기 일 듯
새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고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었던가
어느 집도의(執刀醫)가 급하게 열었다 대충 봉합해버린 가슴 언저리 볼
트 몇개가 느슨하게 풀려서
무시로 드나드는 바람을 따라 그의 몽롱한 의식 속으로 들어서면
조용하다, 먼지 한톨 없는 엔진실
이모노 합금 바닥에 아직 남아 굳어가는 검은 기름의 침묵이
꺼진 흑백 화면 유리알처럼 반짝인다
거기, 한 사내가 이제 막 일을 마친 듯 거친 수염을 쓰다듬으며 우묵한
눈망울을 굴리다 간다
-『창비』. 2007 겨울호
좋은 시는 발견의 미학이 있다고 합니다.
형태와 성질이 전혀 다른 두 사물에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유사성을 찾는 것이 쉽지만은 않는데
절묘하게도 오랜 세월 일하다 고장이 난 경운기가 늙은 오입쟁이로 변신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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