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어머니
김해자
보지 않고는 훔칠 수 없는
시어머니 아랫도리를 닦다 눈을 돌렸다
두 번의 수술과 몇 차례 방사선으로
거웃마저 거의 사라져 숨을 곳 없는,
생산도 사랑도 멈춘 채 배설기능만 남은 은밀한
그곳이 발가벗겨져 형광불빛 아래 서러웠다
열다섯에 전쟁을 만나 고아원 전전하다
식모살이 파출부 미싱질에 반찬공장까지
한평생 궂은 자리 끌고 다니던 몸뚱이
끝내 벗어나지 못한 셋방에 뉘였구나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가난한 내게
매번 치뤄야 할 돈뭉치인 당신은
잊을 만하면 새로운 고통 수혈해주는 당신은
통중 저장소, 모르핀과 스테로이드 대신
몽상과 침묵으로 통증을 관리하는 나는
약에 버무려진 똥 앞에서 노란 개연꽃 흐드러진
연못을 떠올리다 황금빛 연못 속으로 빠져 들어가다
아픈 媤자 앞에서 곰곰 여자를 생각하다
울음밖에는 고통 알릴 길 없는
애기똥풀로 돌아간 당신에게로 엎어지며
다시 사랑할 힘을 얻는다
아무것도 못하는 가난한 시여
시를 낳은 여자여, 어머니여
-시집『축제』(애지시선 01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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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력
김선우
몸져누운 어머니의 예순여섯 생신날
고향에 가 소변을 받아드리다 보았네
한때 무성한 숲이었을 음부
더운 이슬 고인 밤 풀 여치들의
사랑이 농익어 달 부풀던 그곳에
황토먼지 날리는 된비알이 있었네
비탈진 밭에서 젊음을 혹사시킨
산간 마을 여인의 성기는 비탈을 닮아 간다는,
세간 속설이 내 마음에 천둥 소낙비 뿌려
어머니 몸을 닦아드리다 온통 내가 젖는데
건성드뭇한 산비알
열매가 꽃으로 씨앗으로 흙으로
되돌아가는 소슬한 평화를 보았네
부끄러워 모릎을 끙, 세우는
어머니의 비알밭은 어린 여자아이의
밋밋하고 앳된 잠지를 닮아 있었네
돌아갈 채비를 끝내고 있었네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창비,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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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의 안부
김나영
시들시들한 오줌줄기 같은 연락이 왔다
죙일 집에만 틀니처럼 박혀 계시다는 아버지
하루 한 번 텃밭에 물 뿌리러 갈 때만 외출 하신다는데
요즘 뿌리에 이상이 생겼다는데
몇 번 독한 약 뿌렸는데 통 약발이 받질 않는단다
지난 번 통화 땐 열무씨 배추씨
실한 놈으로 사서 부치라고 하셨는데
팔십 평생 한 밭에서 수확한 소출들
씨앗 팡팡 멀리 퍼트리는 힘으로
제 뿌리 죽죽 내리고들 살고 있으니
니들은 네 아버지가 일궈놓은 다모작 아니냐,
울궈 먹어도 몇 번이나 울궈 먹은 게냐
써먹을 만큼 써먹었으니
인제 그 뿌리 부실해질 때도 되았지
인제 갈 시간 되았지
내 염려에 무게를 보내 얹는 어머니
기저귀 갈 시간이라고 그만 전화를 끊자신다
링거 선을 타고 전해온 뿌리의 안부에
잊고 있었던 요의가 탱탱하게 쳐들어온다
-『왼손의 쓸모』 (천년의시작,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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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집
이서린
엄마의 그것을 보고야 말았다
차마 바로보기 민망한 순간
한 호흡 쉬고 바라보는데
문득 마주친 엄마의 눈빛
그 무성한 숲은 어디로 갔을까
지아비 받들고 새끼들 쏟아내던
깊은 우물과 숲을 거느린
엄마의 집은 언제부터 비었을까
할머니 이쪽 다리 들어보세요
예, 됐어요 이젠 반대쪽 다리
간병인과 함께 기저귀 갈다
처음 본 엄마의 오래된 집
수줍고 부끄럽던 한 시절 지나
햇빛 한 장에 드러난 해묵은 집 한 채
전설처럼 농담처럼 구구절절 사연 품고
엄마는 시원한 듯 아기처럼 웃었다
병실 밖 언덕에는 구절초가 지천인데
해는 저만치 산을 넘어가는데
나는 엄마의 엄마가 되어
손을 잡고 노을만 바라보았다
-계간『시와소금』(2012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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