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고운기
혼자일 때 먹을거리 치고 비빔밥만 한 게 없다
여러 동무들 이다지 다정히도 모였을까
함께 섞여 고추장에 적절히 버물러져
기꺼이 한 사람의 양식이 되어 간다
허기 아닌 외로움을 달래는 비빔밥 한 그릇
적막한 시간의 식사
나 또한 어느 큰 대접 속 비빔밥 재료일 줄 안다
나를 잡수실 세월이여, 그대도 혼자인가
그대도 내가 반가운가.
- 시집 『자전거 타고 노래 부르기』(랜덤하우스, 2008)
2010-07-27 / 14시 35분
시 비빔밥/김금용
프라이팬에 물 한 잔 놓고 점심을 먹는다
창틈으로 비껴드는 바람밖엔
숨 쉬고 재잘거리는 소리 전혀 들리지 않는
모두가 죽은 오후 세 시 반에
이승훈시인의 비빔밥 시론을 베껴 먹는다
전기압력밥통에서 식혜가 되어가는 잡곡밥과
기제사에서 쓰고 남은 나물들
된장국물과 김치 조금 섞어 비비다가
마른 김 몇 장과 볶은 깨, 참기름 약간 두르면
비행기 기내음식으로 외국인도 환영한다는
문지방 사라진 웰빙 음식이 탄생한다
클래식과 뽕짝의 경계를 허물고
시와 산문, 그림과 사진 영화의 경계를 허물고
사랑을 구하는 나이와 국경, 性의 구분까지 허물고
오직 눈빛 하나와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열망 하나로
이념도 목적도 필요 없어진 문지방 없는 춘추전국시대에
정해진 요리법이며 트릭도 맛내기도 필요 없는
나만의 식사, 나만의 허락된 존재와 몽상 안에서
혼자 꾸역꾸역 적막을 비벼 먹는다
수저로 허공을 빡빡 긁어 먹는다
- 「우리 詩」2008. 10. 제2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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