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읽고 -수필

시 비빔밥/김금용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0. 8. 24.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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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비빔밥/김금용                
 

 


프라이팬에 물 한 잔 놓고 점심을 먹는다
창틈으로 비껴드는 바람밖엔
숨 쉬고 재잘거리는 소리 전혀 들리지 않는 
모두가 죽은 오후 세 시 반에
이승훈시인의 비빔밥 시론을 베껴 먹는다
전기압력밥통에서 식혜가 되어가는 잡곡밥과
기제사에서 쓰고 남은 나물들
된장국물과 김치 조금 섞어 비비다가 
마른 김 몇 장과 볶은 깨, 참기름 약간 두르면
비행기 기내음식으로 외국인도 환영한다는
문지방 사라진 웰빙 음식이 탄생한다
클래식과 뽕짝의 경계를 허물고
시와 산문, 그림과 사진 영화의 경계를 허물고
사랑을 구하는 나이와 국경, 性의 구분까지 허물고
오직 눈빛 하나와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열망 하나로 
이념도 목적도 필요 없어진 문지방 없는 춘추전국시대에
정해진 요리법이며 트릭도 맛내기도 필요 없는
나만의 식사, 나만의 허락된 존재와 몽상 안에서

 

혼자 꾸역꾸역 적막을 비벼 먹는다 
수저로 허공을 빡빡 긁어 먹는다
 


- 「우리 詩」2008. 10. 제244호
  


프랑스의 요리가 명성이 자자해서인지 재료가 귀해서인지 프랑스 삼대 진미인 거위간(푸아그라), 송로 버섯(트뤼플), 철갑상어알(캐비어)를 세계 3대요리라고 일컫기도 한다. 그 중에 푸아그라는 만드는 방법이 티브에서 소개가 되었는데 거위에게 먹이를 강제로 먹게 하는 것이었다. 거위 주둥이에 깔때기 같은 먹이 공급호스를 박아 놓고 콩이나 곡물을 강제로 들이붓는데 머리 뒤에는 용수철을 달아놓아 고개가 젖혀져서 넘어간 먹이를 게워내지도 못하도록 해 놓았다.

 

아무리 맛있는 산해진미나 진수성찬도 배 부르면 쳐다보기도 싫은데 어둡고 좁다란 밀실에 가두어 놓고 입을 벌리게 하고 먹이를 강제로 투여를 하면 얼마나 괴로울까. 그것은 감기걸려 입맛 떨어진 아이에게 기운차리라고 먹이는게 아니라 쏟아붓는 것이었다. 이렇게 강제로 먹이를 먹은 거위의 간은 정상적인 간보다 10배 가량 부어오르는데 이것이 푸아그라라고 한다. 간이 정상보다 크면은 병이 생긴 것인데 일부로 병이 생긴 간을 만들어서 요리로 즐기고 있으니 우리의 식문화상식으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서울올림픽을 전후하여 브리지트 바르도라는 프랑스 여배우는 우리나라의 보신탕 식문화를 비난하면서 당시 대통령에게 한국인이 보신탕을 먹지 못하게 해달라는 편지를 보내는가 하면은 세계동물보호협회는 개고기 문화가 근절되지 않으면 올림픽을 보이콧하겠다고 경고를 보내기도 했었다.

 

그 여파로 보신탕이라는 간판은 영양탕이나 사철탕이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하였고 대로변에서 골목이나 변두리로 숨어들어야 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먹어온 식문화가 근절될 리가 없듯이 사철탕 집은 여전히 성업중이고 우리나라에 머물고 있는 외국인(유럽)인들도 식당에 둘러앉아 보신탕을 맛있게 먹는 것을 보았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처럼 음식이란 배고플 때 먹는 음식이 제일 맛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맛있어 하고 선호하는 세 가지의 음식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식성이 달라 일률적으로 기준을 정하기는 그렇지만 그 중에 선호하는 음식 하나가 비빔밥이 아닐까 싶다. 비빔밥은 한 마디로 말해 잡탕이다. 비비는 재료나 양념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음식으로 탄생을 하면서 여러 가지의 오묘한 맛을 내며 입맛을 돋구는데 이 비빕밥에도 유래가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 임금이 점심때나 종친이 입궐하였을 때 먹는 가벼운 식사였다는 궁중 음식설, 바쁜 농사철에 여러번 음식을 먹어야하는데 일손도 부족하고 그릇도 부족하여 그릇 하나에 여러 가지 음식을 섞어서 먹게 되었다는 농번기 음식설, 제사를 마치고 나면 젯상에 놓은 제물을 빠짐없이 먹어야 하는데서 나온 음복설이 있고 묵은 음식 처리설은 섣달 그믐날 묵은해의 음식을 남기지 않기 위해 남아 있는 것들을 몽땅 비벼서 먹었다고도 한다.

 

전쟁 때문에 생겨난 설도 있는데 임금몽진설은 고려 몽고 침입으로 임금이 몽진을 했을 때 수라상에 올릴 만한 음식이 없어 할 수 없이 밥에 몇가지의 나물을 비벼서 올렸다고 하며,  동학혁명설은 그릇이 부족한 동학군들이 그릇 하나에 이것 저것을 넣어 비벼서 먹었다고도 한다. 왜란설은 왜란 때 진주성안의 백성들이 빨리 식사를 마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급히 만들어 먹었다고 하는데 어느 것이 정설이든 효시이든 간에 비빔밥은 우리나라의 식문화로 굳건히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당당히 음식호적에 이름을 올렸을 뿐만 아니라 서열이 상위권에 속하는 비빔밥은 침섞는 문화의 탄생에 일조를 하기도 하고 여럿이 모였을 때는 대화가 주재료가 되어 비벼지기도 한다. 하지만 시 속에 화자는 어느 날 이 비빔밥을 혼자서 적막을 넣어서 비빈다. 점심이라고 하기에는 늦은 오후 세 시 반에 이것저것 넣어서 몸에 좋은 웰빙음식을 만들었다고는 하는데 시를 읽고나면은 무엇인가 정리가 된 것 같지 않아 잔반처리를 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혼자 꾸역꾸역 적막을 비벼 먹는 것도 그렇고 수저로 허공을 빡빡 긁는 것도 밥이 모자라서 긁는 것이 아닐 것이다.

 

오후 3시반을 인생의 시간으로 보면 몇 시쯤에 해당이 될까. 저녁 6시라는 시집도 있고 여섯시라는 시도 있지만 화자는 점심을 먹으며 인생의 시간을 계산해보고 있다. 마무리하기에는 이른 시간, 아직 퇴근시간이 많이 남아있는 시간이다. 그런데 화자는 무엇인가가 답답하다. 이 답답함를 풀어헤쳐보는 행위가 비비고 긁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남이 낸 상처는 쓰리고 아픈 것으로 끝나지만 스스로 낸 상처는 과정에 쾌감을 동반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화자는 몽상안에서  자의로 내면을 긁어 속상처를 만들고 있는데 허공을 향해 빡빡 긁는 행위 또한 나태해지고 무기력해질 수 있는 인생의 세 시 반의 시간을 추스르고 다독이며 닦달을 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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