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비빔밥/김금용
프라이팬에 물 한 잔 놓고 점심을 먹는다
창틈으로 비껴드는 바람밖엔
숨 쉬고 재잘거리는 소리 전혀 들리지 않는
모두가 죽은 오후 세 시 반에
이승훈시인의 비빔밥 시론을 베껴 먹는다
전기압력밥통에서 식혜가 되어가는 잡곡밥과
기제사에서 쓰고 남은 나물들
된장국물과 김치 조금 섞어 비비다가
마른 김 몇 장과 볶은 깨, 참기름 약간 두르면
비행기 기내음식으로 외국인도 환영한다는
문지방 사라진 웰빙 음식이 탄생한다
클래식과 뽕짝의 경계를 허물고
시와 산문, 그림과 사진 영화의 경계를 허물고
사랑을 구하는 나이와 국경, 性의 구분까지 허물고
오직 눈빛 하나와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열망 하나로
이념도 목적도 필요 없어진 문지방 없는 춘추전국시대에
정해진 요리법이며 트릭도 맛내기도 필요 없는
나만의 식사, 나만의 허락된 존재와 몽상 안에서
혼자 꾸역꾸역 적막을 비벼 먹는다
수저로 허공을 빡빡 긁어 먹는다
- 「우리 詩」2008. 10. 제2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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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이대흠
비빔밥엔 잡다한 것이 들어가야 한다 싱건지나 묵은 김치도 좋고 숙주노물이나 콩노물도 좋다 나물이나 남새 노무새도 좋고 실가리나 씨래기 시락국 건덕지도 좋다 잘못 끓인 찌개 찌끄래기나 달걀을 넣어도 좋지만 빼먹지 않아야 할 것은 고추장이다 더러 막걸리를 넣거나 된장국을 흥창하게 넣은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취향일 뿐 그렇다고 국밥이 되는 것은 아니다
비비밤엔 여러 가지 반찬과 참기름 고추장이 들어가야 하지만, 정작 비빈 밥이 비빔밥이 되기 위해서는 풋것이 필요하다 손으로 버성버성 자른 배추잎이나 무잎 혹은 상추잎이 들어가야 비빔밥답게 된다 다 된 반찬이 아니라 밥과 어우러지며 익어갈 것들이 있어야 한다 묵은 것 새것 눅은 것 언 것 삭은 것 그렇게 오랜 세월이 함께 해야 한다
하지만 재료만 늘여놓는다고 비빔밥이 되는 것은 아니다
비빔밥을 만들기 위해서는 요령이 필요하다. 비빈다는 말은 으깬다는 것이 아니다 비빌 때에는 누르거나 짓이겨서는 안 된다 밥알의 형태가 으스러지지 않도록 살살 들어주듯이 달래야 한다 어느 하나 다치지 않게 슬슬 들어 올려 떠받들어야 한다
손과 손을 맞대고 비비듯 입술과 입술을 대고 속삭이듯 그렇게
몸을 맞대고 서로의 체온을 느낄 수 있게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우려 이미 분리할 수 없게 그렇게
그렇게 나는 너를 배고
너는 내게 밴 상태라야 비빔밥이라고 할 수 있다
우는 사람아 비빔밥을 먹을래?
내가 너에게 들고 싶다
-시집『귀가 서럽다』(창비시선 311. 2010)
2010-08-25 / 13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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