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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이란 무엇인가?
혈액형이란 적혈구 표면에 존재하는 항원을 의미한다. 1900년에 오스트리아의 카를 랜스타이너가 ABO 혈액형을 발견한 이래 지금까지 500여 가지 항원이 발견되었다. 혈액형의 유형이 500여 가지나 된다는 뜻이다. ABO 혈액형은 이런 500가지 혈액형 중 하나일 뿐이다. 보고된 혈액형의 수가 이렇게 많지만 실제적으로 중요한 혈액형은 ABO와 Rh 혈액형 등 20가지 정도로 보면 된다.
●혈액형을 왜 구분하는가?
혈액형을 구분하는 유일한 이유는 수혈 때문이다. 혈액형이 다른 혈액을 수혈 받으면 면역반응에 의해 사망할 수 있다. 또 장기이식 때도 혈액형 검사가 필요하고, 산모와 태아의 혈액형 때문에 신생아가 임신 혹은 출산 후에 사망하기도 한다. 따라서 혈액형 검사는 수혈과 장기이식 전, 그리고 산전검사로서 필요하다.
●혈액형을 구분하는 중요한 인자는 무엇인가?
적혈구 표면에서 표현되는 혈액형은 탄수화물 성분일 수도 있고, 지질·당지질·단백질일 수도 있다. 이런 성분들이 표현되는 것은 혈액형 유형에 따라 다른 개인별 유전자에 의해 좌우된다.
●국내 인구의 각 혈액형별 인구 분포비는 어떻게 되나?
혈액형별 인구 점유비는 인종에 따라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A형이 전체 인구의 34%인데 비해 일본은 38%, 중국은 26%, 미국 백인은 42%, 미국 흑인은 29% 정도다. O형은 우리가 28%, 일본 29%, 중국 42%, 미국 백인 45%, 미국 흑인 49%이며, B형은 우리가 27%, 일본 22%, 중국 26%, 미국 백인과 흑인이 각각 10·18% 등이다.또 AB형은 우리와 일본 11%, 중국 6%, 미국 백인과 흑인 각 3·4% 등으로 보면 된다.
●혈액형별로 성격상의 특성을 부여하는 것이 가능하며, 근거는 있는가?
과학적 근거가 없다. 과학적으로 개인의 성격을 정의하고 분류하는 데에는 5가지 기준이 사용되는데, 그것은 ▲신경질적인 정도 ▲개방성 ▲내성적이냐, 외향적이냐 여부 ▲주변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 ▲얼마나 양심적인가 등이다. 이를 판단하기 위해 240개의 조사 문항을 사용한다. 참고로, 2005년 타이완에서 3000여명의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시행한 연구에서도 혈액형과 개인의 성격은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얼마 전,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일본 일류기업 사장·회장의 혈액형별 점유비를 조사한 결과, A형 39.1%, O형 27.5%, B형 22.4%, AB형 11.0% 등의 결과가 제시됐다. 이런 분류가 단순한 혈액형별 인구수에 비례한 결과가 아니라 혈액형별 특성이 반영된 것이라고 보는가? 그렇다면 근거는 무엇인가?
이는 일본의 조사치일 뿐이다. 한국인과 비교하면 표에서 보듯 전체 인구의 각 혈액형 분포비와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다. 전체 점유비가 높은 A형에서 사장·회장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특정 직업과 특정 혈액형의 상관성이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는가?
앞에서 밝혔듯 특정 직업군과 혈액형의 상관성을 거론할 과학적 근거는 없다. 일본의 조사치에서 보듯 사장·회장 점유비는 인구의 혈액형 점유비를 반영한 것일 뿐이다. 결국 모든 혈액형이 비슷한 점유비로 사장·회장을 한다고 보면 된다. 다른 직업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혈액형이 개인의 성품을 결정한다는 견해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성격 결정에는 많은 유전자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ABO 혈액형은 인간이 가진 46개의 염색체 중 9번 염색체 끝 부분의 유전자 하나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 유전자가 모든 성격을 결정한다고 보기 어렵다. 실례로, 알래스카를 통해 미국으로 이주한 몽골족은 미국 원주민 인디언들로, 이들은 모두 O형 혈액형을 가졌다. 이들은 인디언들끼리만 결혼하므로 모두 O형 혈액형을 갖게 되었는데, 이들이 모두 같은 성격을 가진 것은 아니다. 따라서 혈액형이 성격을 결정한다고 볼 수 없다.
●지금의 혈액검사 방식이 의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가?
자신의 혈액형을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언젠가 입영 장병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5.5%가 자신의 혈액형을 잘못 알고 있었다. 고령자들은 더할 것이다. 문제는 손가락 끝에서 한 방울의 피를 채혈해 시행하는 혈액형 검사가 약식이라는 데에 있다. 정확한 혈액형을 알려면 혈구·혈청형 검사가 필요한데, 약식검사는 혈구형 검사만 하는 것이다. 예컨대 A형은 적혈구에 A항원이 있으면서 혈청에는 항B항체가 있어야 한다. 혈구형 검사는 이 사람의 적혈구가 항A 시약과 반응하는지를 보는 것이고, 혈청형 검사는 이 사람의 혈청이 B형 적혈구를 응집시키는지를 보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검사를 모두 거쳐야 정확한 판단이 가능하다. 더구나 한국인에 특히 많은 변이형 혈액형은 약식검사로는 찾기가 어렵다. 따라서 오차투성이인 이런 약식 혈액형 검사는 전혀 의미가 없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서울신문 2009-09-07 2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