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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밥벌어 먹기 참 힘들구나”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1. 1. 8.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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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밥벌어 먹기 참 힘들구나”

시인들 ‘시와 시인의 가장 큰 적’ 경제문제로 꼽아

조선시대 박인로의 ‘누항사(巷詞)’까지 올라갈 것도 없다. ‘동백꽃’의 소설가 김유정은 죽기 열흘 전 친구에게 ‘탐정소설을 번역해 돈을 100원쯤 받으면 뱀과 닭을 사다 고아먹고 일어나고 싶다.’고 편지를 쓰고는 끝내 가난의 고통 속에서 스러져 버렸다. 넉넉하지 못한 생활에서 오는 폐병 같은 고통, 그 고난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글을 쓰는 모습은 근대 문인들의 전형적인 초상이었다.

●“시의 적은 산만한 생활”

 

하지만 21세기에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은 모양이다. 시 전문 계간지 ‘시인세계’ 가을호(통권29호)가 기획 특집으로 마련한 ‘시인의 적, 시의 적’에서, 여전히 많은 시인들이 ‘시와 시인의 가장 큰 적’으로 ‘경제적 문제’를 꼽았다.

애초에 시인은 돈과 인연이 없는 직업이기는 하다.

게다가 지금은 오감을 자극하는 영상문화에 많은 독자를 잃어 시는 정말 ‘돈 안되는 짓’이 됐다. 그런 지금 “시를 돈으로 생각한 적은 없지만 시로써 밥 먹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고 쓴 천양희 시인처럼 여러 시인들이 시와 생활 사이의 간격을 아쉬워했다.

 

애초에 시인은 돈과 인연이 없는 직업이기는 하다.

 

신달자 시인은 “시의 적은 한마디로 산만한 생활”이라면서 밥벌이가 먼저가 되는 생활인으로서의 시간을 안타까워한다. 그러면서 “생활이 우선이라는 약빠른 생각이 시를 자꾸만 멀리하게 만든다.”고 고백한다. 이재무 시인도 “나날의 구차한 생활세계는 나에게 깊이 있는 사유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면서 글써 먹고 사는 삶의 비루한 고통을 전한다.

 

반면 가난의 고통을 그냥 ‘해탈’해 버린 시인들도 있다. 장석주 시인은 생활의 문제가 오히려 “창작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밥 먹고 새끼를 키우고 돈을 버는 생활이 시보다 덜 숭고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운을 뗀 뒤 “그런 생활을 외면하고 좋은 시는 나오지 않는다. 시인의 적은 시인의 동지”라고 말한다.

 

●시단 내부와 비평가 또다른 적으로

 

시와 시인의 적이 생활뿐이라고 하면 밋밋하다 했을까. 문단권력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시인의 적이 외부가 아니라 시단 내부에 있다는 말. 거들먹거리는 시인이나, 시인을 쥐고 흔드는 비평가에 대한 비판도 빠지지 않았다.

 

김종해 시인은 “좋은 시인들의 좋은 시에 잘못된 등가를 매기는 비평가들의 편향적인 시각은 우리 시를 병들게 한다.”고 날을 세운다. 그러면서 “철옹성 같은 문학 파벌과 섹트주의 때문에 신세대 시인들은 좌절하거나 눈치마저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천양희 시인도 “남의 시를 깊이 읽지도 않고 직시(直視)도 없이 함부로 비판하는 자들의 오만방자한 태도가 바로 시인의 적”이라고 비평가들에게 직격탄을 던진다. “시의 적은 시인”이라고 한 정일근 시인은 “가장 무서운 적은 나를 절망하도록 뛰어난 시를 쓰는 시인”이라고 재치있는 답을 내놓기도 했다.

 

한편 시인의 적은 창작의 고통과 싸워야 하는 시인 자신이라는 답도 많았다.

 

송재학 시인은 “나태 때문에 스스로의 다짐이 늘 빗나간다.”고 했고, 이윤학 시인은 “조바심 때문에 나에게는 여유가 없었다.”고 고백한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서울신문 2009-08-19  2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