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 타인을 치유하는 시, 아트(Art)이자 테크네(Techne)
ㅡ시집,『두부』 2011년, 김영미 『시와사상』
김백겸(시인, 웹진 《시인광장》주간)
비단 끈
필자는 첫 독자의 자격으로 새 시집원고를 읽는다. 필자는 무크 『화요문학』(2006)에 일면식도 없는 김영미 시인의 시「비단 끈」을 리뷰한 적이 있다. 오랫동안 시를 접었다가 다시 시를 쓰면서 ‘삶/꿈’의 주제를 열심히 생각해 보던 때였는데 김영미 시인이『애지』(2006년 봄호)에 발표한 「비단 끈」이 눈에 들어왔다. 그 후 김영미 시인이 발표하는 작품들을 눈 여겨 보았고 내가 관계하는 잡지의 필자로 청탁을 하기도 했는데 이 인연으로 해설까지 쓰게 되었다.
삶보다는 죽음
죽음보다는 자살이란 말이
더 솔깃한 내게
누군가 비단끈이 없어 못 죽는다고 했다
나일론끈이면 어때서요 그냥 살고 싶다 그러지요
비아냥거리면서
비아냥거리면서
나는 그만 비단끈의 마력에 걸려들었다
우선 지도를 펼치고
머나먼 사마르칸트를 향해 길을 떠난다
구도의 길이었건
교역의 길이었건
목숨을 걸었던 꿈이면서 끈이었던
실크로드를 따라간다 터벅터벅 다리를 끌며 절며
비단길 비단천 비단꿈 비단끈
한 곡의 노래
한 줄의 싯구
때론 한 줄기 햇빛과 바람으로
삶과 죽음이 손바닥처럼 명쾌해질 때
순간, 내 눈앞에서 목을 조르고 달아나던
붉고 푸른 비단끈들
거울을 당긴다
그 속에 내가 걸어온 길이 보인다
붉은 올가미
그가 점찍어 놓았다는 소나무도 보인다
꿈틀거리는 목줄기를 어루만지며
비단길 비단천 비단꿈 비단끈
내가 목매달았던 나무들
강가에 걸린 한 그루 미루나무였을지도
그저 한 그루 신기루였을지도
티브이에서는 두 연인이 사랑을 속삭이고 있다
죽도록 사랑해요
서로의 팔을 목에다 두르고
바싹, 비단끈을 조으고 있다
(시「비단 끈」전문)
옛날 원고를 뒤적여 그 당시의 리뷰를 찾아보니 나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욕망이 가 닿은 시선이 “비단끈”이라. 생은 화려한 풍경을 좋아하지. 시 속의“비단길 비단천 비단꿈 비단끈”처럼. 애착을 가져야 살 수 있는 게 인생이지.“삶과 죽음이 손바닥처럼 명쾌해질 때”“비단끈”은 ‘A'이면서 'A'가 아닌 세계의 알레고리의 연결고리가 되어 사바세계가 곧 열반세계임을 암시하는구나. 요새 도통한 여자들이 시인이 되나보다. 증산도甑山道가 후천 개벽한국에 도통한 여자들이 삼천명이나 출세한다고 하더니 그 중 몇몇이 시인으로 태어났나 보다. 도통한 시인들의 시는 선시禪詩처럼 무맛이기 일쑤인데 이 시는 욕망의 풍경으로 맛을 솜씨 좋게 내면서 저 쪽의 풍경도 아름답게 그려냈으니 재미있는 시이다. (『화요문학』(2006, 58쪽)
요즘 같으면 좀 더 세련되게 썼겠지만 시를 절필하던 10년간 쳐다보던 책들이 비의秘義와 도장道藏에 관한 책들이라 리뷰는‘증산도甑山道’까지 여과 없이 인용하고 있다. ‘비단끈'이 라깡이 말하는 '오브제 쁘디 a'의 대상이면서 시인의 욕망이자 ‘죽음’의 욕망으로 읽고 내가 해석의 재미를 느꼈다고 생각된다.
애착은 삶의 여의주이면서 동시에 병고病苦이다. 불가에서는 ‘깨달음’을 방해하는 ‘마라’이며 탐진치貪賑癡 삼독三毒의 제일원인으로 본다. 그러나 이런 입장은 공관空觀을 중시하는 극동지역 불가佛家의 해석일 뿐 현실의 입장에서는 거꾸로 해석해야한다. 삶에서는 애착이 없으면 도리어 문제가 된다. 존 볼비는 유아가 부모와 주변환경과의 애착장애가 있을 경우 성인이 된 후 애착의 이차 대체물로 술 마약 섹스등 자아의 중독의존현상을 초래한다고 보았다. 포유동물은 정서의 교감으로 서로의 몸과 정신에 생화학적 신경생리를 변화시킨다. 어려운 말을 쉽게 말하면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는 얘기며 건강한 애착이 중요하다.
이 시는 “삶보다는 죽음/죽음보다는 자살이란 말이/더 솔깃한 내게/누군가 비단끈이 없어 못 죽는다고 했다”는 도입부로 시작한다. 화자는 삶의 애착대상을 은유하는 ‘비단끈’의 사치와 허영을 조소한다. 그러나 시의 화자는 ‘비단’이 실크로드를 건너가게 하는 삶의 환상이며 욕망의 추동물 임을 깨닫고 ‘비단’의 기표에 매료된다. 삶을 욕망하게 하는 훼티시(fetish)로서의 비단. 이 기표가 삶의 ‘대타자’이며 주체가 발화하는 위치이며 동시에 꿈과 “신기루”이기도 하다. 죽음과 삶을 양변兩邊으로 하는 삼각형이 있고 시를 쓰는 화자는 시의 다른 변邊에서 상상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화자를 포함하는 삼중시선이 관조이자 일종의 깨달음인 마지막 행을 낳았다. “티브이에서는 두 연인이 사랑을 속삭이고 있다/죽도록 사랑해요/서로의 팔을 목에다 두르고/바싹, 비단끈을 조으고 있다”.
사랑의 세世와 계界
꽃이 목을 매고 잎이 목을 매고 목숨 붙든 것들의 상사 상사!
사랑은 무죄 꿈도 무죄, 이 아름답고 불온한 무죄의 성역에서 성전을 치르고 싶다 십자가
못박히고 싶다 그리하여
내가
당신의
무덤이고 신전이기를
파라오이고 피라밋이기를
옥새이고 족쇄이기를
사원의 벽돌에 아로새겨진 상형문자
영원히 풀 수 없는 암호이기를
갈증이기를
사막이기를
수상한 바람
해가 지지 않는 백야이기를
모래 속에 엎드린 검은
전갈이기를
당신은
나의
구원이고 종교이기를
목숨이기를
천둥과 번개
하늘의 언명이기를
십자가를 지고 죽음에 이르는
상사이기를
시작과 끝이기를
순간이고 영원이기를
(시「사랑」전문)
개인마다 농도와 심천이 다르겠지만 사랑이란 참 복잡한 물건이다. 인간이 ‘사랑의 신비’라고 말하는 ‘관계의 먼 길’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동물처럼 인간은 에로스의 에너지를 전부 생식에 쓰지 않는 것일까.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종으로서의 의무와 완성을 마쳤는데도 왜 다시 사랑에 목말라 할까.
정신분석학자들에 따르면 사랑의 에너지는 에로스이지만 수면하의 심리는 나르시스라고 한다. 연인을 사랑하는 ‘나’는 연인의 모습에 투영된 ‘나’ 자신의 아름다움을 욕망한다. ‘나’는 연인과 합일욕망을 갖지만 실체는 거울에 바친 ‘나’이기에 불가능하다. 좌절은 사랑에 대한 도착과 신경증을 불러오는데 모두 나르시스의 변주와 환상이다.
김영미시인은 시의 1연에서 다음과 같이 호소한다. “사랑은 무죄 꿈도 무죄, 이 아름답고 불온한 무죄의 성역에서 성전을 치르고 싶다”. 2연과 3연은 시적 화자의 위치만 바꾸어서 사랑의 다른 크기를 은유하고 있다. ‘파라오’와 ‘피라밋’과 ‘천둥’과 ‘번개’의 기표들은 모두 사랑이라는 욕망의 다른 이름이다. ‘기표’가 다의적 ‘기의’를 미끄러지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사랑이라는 실체 위로 ‘기표’가 미끄러지고 있다. 시인의 정열이 설정한 이 상황은 어떤 기표로도 사랑의 실체를 온전히 드러낼 수 없음을 말한다.
사랑의 이런 힘에 대해 옥타비아 빠스는 ‘사랑은 지구상에서 축복받은 자가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에 가장 근접해 있는 어떤 무엇’이라고 말한다. ‘시와 노래와 전설’은 이런 불가능한 욕망에 대한 자아의 표현이 아닐까.
정신분석학과 진화심리학과 뇌과학등을 동원해서 사랑의 패턴을 그려볼 수 있는 21세기에도 사랑을 과학적 매뉴얼과 처방으로 해결하기란 쉽지 않다. 사랑의 신비를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는 정보는 인간의 삶이다. 그 중에서도 예술이 사랑의 신비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사랑이 시적 본질과 제일 잘 어울린다’는 미학가들의 말이 옳다면 사랑은 예술작품을 창작하는 심리적 에너지이기도 하다.
김영미 시인이 드러내고자 하는 사랑의 실체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예술가마다 사랑의 표현 방법이 다른 것은 예술가마다 ‘사랑’의 문제를 제기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김영미 시인이 파악한 사랑이란 어떤 것일까. “꽃이 목을 매고 잎이 목을 매고 목숨 붙든 것들의 상사 상사!”로 시작하는 도입부와 “십자가를 지고 죽음에 이르는/상사이기를/시작과 끝이기를/순간이고 영원이기를”의 결어로 끝나는 형식이다. 지적인 형식을 좋아하는 현대시의 입장에서는 김영미 시인의 낭만적인 견해를 지지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연구가들에 의하면 낭만적인 사랑이 인간의 마음에 진화한 이유가 있다. 개체는 한 대상에게 집중함으로써 짝짓기에 투입되는 시간과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 한 대상에의 애착은 결과물인 자식을 성공적으로 같이 양육할 수 있는 확률을 높인다. 낭만적인 사랑에는 인간뇌의 구조와 화학작용이 깊이 작용한다. 탐구자가 생물학적인 견해를 지나 심층심리학까지 내려가면 더 복잡하다. 신화와 전설은 세세년년 윤회하며 진정한 짝을 찾아야 하는 인간의 심리적 원형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런 주제를 타고르는 다음과 같이 시로 말한바 있다. ‘난 그대를 무수히 많은 형태로 사랑한 것 같노라/셀 수도 없이 많이/ 한 생 다음의 생에도, 그 다음 생에서도 영원히.../오늘 그 사랑이 당신의 발아래 쌓여있네, 그 사랑은 목적지를 발견했네, 당신에게서./인간의 사랑은 모두 과거이고 영원이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는 사랑의 느낌을 말한 시인데 김영미 시인의 위 시「사랑」도 이 주제를 같이 한다. 인간이 시간으로 경험한 크기가 ‘세世’이고 공간으로 경험한 크기가 ‘계界’라고 볼 때 사람마다 경험한 ‘세계世界’의 크기는 다르다. 개인들이 경험하는 사랑의 ‘세계世界'도 마찬가지다. 사랑을 세계의 ’시작과 끝‘과 ’순간과 영원‘까지 확장하려는 김영미 시인의 정열이 위 시편을 낳았다고 생각한다.
별을 지나 당신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최면 의자에 앉는다
백 년 전 당신은 무엇이었습니까
다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신은 무엇이었습니까
최근에 나는 이 세상에 사람이 되어 왔다
밝혀지지 않은 어떤 프로그램에 의해
테마가 있는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다
나의 취미는
원조 찾기이다
미래의 꿈은
기록 이전의 시대를 거슬러 올라
나무와 풀, 풀과 바람, 최초의 구름이 자리 잡기 전
나의 맨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최면술이 아니더라도
나의 과거는 밝혀져 있다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
별!
제 온기 하나만으로도 한없이 빛나는
그러나 미심쩍다
아무래도 내가 반짝이는 고유명사의 幻에
안주하려 드는 것 같다
다시 최면 의자에 앉는다
별을 지나
당신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色이기 전에
空이기 전에
당신은 무엇이었습니까
(시「별을 지나서」전문)
최면이 시의 소재로 등장하니 흥미롭다. 최면이 심층무의식의 시간에서 전생을 기억한다고 하는 가설과 이론들이 있기에 더욱 그렇다. 최면은 치료자가 말이나 동작신호로 몰입경을 유도하는데 명상 기도 참선등을 통한 몰입상태와 비숫한 상태라고 한다. 단 전자는 타인의 암시에 의해 후자는 자기암시에 의해 현실의 각성상태와 다른 상태에 들어간다. 최면요법은 과거에도 쓰였으나 프로이드와 융이 처음에 이 기법으로 무의식을 연구하면서 과학의 범주로 들어오고 널리 알려졌다.
김영미 시인은 자기암시의 최면내용을 시로 적고 있다. 김 시인은 시에서 “ 밝혀지지 않은 어떤 프로그램에 의해 /테마가 있는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다.”라고 말한다. 윤회와 전생의 가능성을 인정한 표현인데 이 생각은 근대과학의 유물론이 등장하기 전 문명사회 약 만년동안 인간의 마음을 지배해온 생각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과 세계의 근원을 알고자 한다. 이 분야에는 철학과 종교와 예술이 있다. 최근에는 과학이 새롭게 등장해서 인간의 의문에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과학이란 자연세계를 인간의 유용과 목적을 위해 인위적인 해석한 모델이다. 보편적 진리나 법칙을 위해 사물과 운동의 관계에 수학논리(방정식)를 동원한다. 과학은 사건을 정량화해서 대입할 수 있고 계속 같은 결과가 나와야 ‘참’으로 인정하므로 측정할 수 없는 대상은 과학에서 제외시킨다.
하이젠베르그는 양자역학을 연구하다 아원자亞原子 입자운동이 관찰자의 참여에 의해 달라짐을 밝혀냈다. 자연의 객관적인 진실이 다시 인간의 문제로 환원되면서 과학모델의 '참‘에 대한 객관성이 의심스러워졌다. 필자의 생각에 과학의 인과율은 아직 불가의 연기緣起와 유식론唯識論이 말하는 다차원의 인과론을 포괄하지 못한다. 인간의 인식(측정)가능한 범주의 사건만 뉴턴역학이나 상대성이론의 모델로 인과율을 적용하는 수준이다. 우주지성이나 심혼의 문제등은 현대과학의 측정범위 밖에 있다.
이 시에서 김영미 시인은 시인의 직관으로 화자의 기원이 별이라고 믿는다. 현대천문학은 우주모델을 빅뱅으로 설명한다. 약 백오십억년전에 수조도의 온도와 압력이 있는 태초의 특이점으로부터 시공과 에너지가 폭발하면서 지금의 자연세계가 만들어졌다는 모델이다. 이 모델이 옳다면 아직도 광속으로 팽창하는 은하들과 시공간, 물질에너지와 정보(질서)에너지는 모두 태초의 재료가 같다는 뜻이다. 이 모델은 ‘만물에는 제일원인이 내재해있다’는 신플라톤주학파인 플로티노스의 직관을 뒷받침한다. 지구는 태양계의 성간물질로 태양은 은하계의 에너지로 만들어졌으니 지구의 생명과 물질은 모두 별에서 기원을 찾아야 한다.
이런 사유를 배경으로 한 김영미 시인의 원망願望은 이 시에서 다음 구절로 드러난다. “미래의 꿈은 /기록 이전의 시대를 거슬러 올라/나무와 풀, 풀과 바람, 최초의 구름이 자리 잡기 전/나의 맨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김영미 시인은 문명의 선사先史, 유전자의 역사, 물질의 역사, 별의 역사를 모두 지나 자신의 근원을 알고자 한다. 그러면 시인의 근원이 빅뱅이전에는 무엇이었을까. 현대과학은 답이 없다.
김영미 시인은 다시 시인의 상상으로 묻는다.“별을 지나/당신은 어디에서 왔습니까//色이기 전에 /空이기 전에 /당신은 무엇이었습니까”. 불가에서는‘부모미생전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이라는 상징의 답을 드러낸다. 내 생각에 이 기표의 기의는 시공간과 인간의 인식범주를 벗어나 있는 너무나 큰 문제여서 언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조사들은‘한 생각’의 회광반조回光返照로‘ 본래면목本來面目’의 돈오頓悟를 주장하지만 검증이 어렵다. 그들의 체험이 과학을 초월해 있기에.
별자리 ‘오리온’의 알레고리
우주의 동쪽 땅
부산 시립 박물관 뜰에
수십억 광년 전에 출발한 별빛이 도착했다
사랑의 고해성사가 시작되고
일곱 번째 블라우스 단추가 열리던 순간
프리지아 꽃다발
내 가슴에 긴 부저음을 울리기 시작했다
지하철도 환승역도 없었던 시절
세상은 내게 단 하나의 직선도로였다
그가 나의 핸들을 꺾었을 때
내가 더욱 나를 틀었을 때
눈앞에서 광속으로 열리고 닫히던 시간들
나는 빛이 되어 날아갔다
오리온 / 오, 나의 오리온
오늘처럼 별빛 치렁치렁 땅바닥까지 내리는 날
지나간 시간이 다가와 잘 있니?
내게 안부를 물을 때면
깨어진 내 별자리 조각조각 은하 속으로 떠내려간다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 올림푸스 언덕, 내가
머나먼 신화 속으로 역회전하지 않는다면
설화 속의 직녀가 되어
저 건너 은하수 푸른 강가로
사랑의 베틀노래를 띄우지 않는다면
오리온
나의 오리온
너는 지나가버린 아득한 시간일 뿐
모형 별자리판에 박힌 한낱 납덩이일 뿐
오늘처럼 별빛 쏟아지는 날
하늘은 통째로 하나의 별자리
수십억 광년을 달려온 사냥꾼들이 모두 일어서
일제히 화살을 당긴다 세기의 명궁
오! 슈퍼스타 / 나의 오리온
(시「슈퍼스타 나의 오리온」전문)
별자리 오리온 좌는 김영미 시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자리일까. 그리스 신화에서는 사냥꾼 오리온이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사랑한 대가로 아폴론의 계략에 의해 연인의 화살에 죽은 이야기를 남기고 있다. 제우스는 아르테미스의 간청으로 언제나 볼 수 있도록 오리온을 하늘의 별자리로 만들어주었다는 전설이다. 오리온은 겨울철 남쪽 하늘에 보이는 별자리로 적색 1등성 베텔게우스와 백색1등성 리겔, 오리온 띠 모양의 세 개의 2등성으로 이루어졌다. 세별 중 하나는 산광성운인 오리온자리 대성운 M42이다. 허블망원경으로 본 이 성운의 붉은 빛 사진은 매우 아름답다.
김영미 시인은 오리온자리의 신화에 자신의 사랑을 투사해서 이 시를 만들었다. 서양과 동양의 고대 점성술은 지상은 일은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반영이라는 믿음에 기초해 있다. 인간은 소우주이고 대우주의 에너지와 운동의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이다. 동양의 음양오행도 자연의 변화를 관찰한 선인들의 이런 생각이 반영된 이론이다. 명리학은命理學은 천문天文의 관점에서, 풍수風水는 지리地理의 관점에서, 한의학은 인사人事의 관점에서 바라본 이론일 뿐 모두 같은 음양오행陰陽五行의 기초를 공유한다. 필자가 연구를 좀 해본 입장에서 볼 때 이런 이론들의 술術로서의 효용은 한의학이 인간의 몸에 적용되는 만큼은 의미가 있다.
시란 가능성의 세계를 드러내서 시인이 자신의 진실을 전달하고자 하는 시도이므로 그 내용의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이 시의 아름다운 구성을 들여다보자. 시속의 화자는 자신을 ‘아르테미스’로 이상세계의 연인을 ‘오리온’으로 설정한다. “부산 시립 박물관 뜰”에서 이루어진 지상에서의 현실적인 사랑도 배후에는 하늘사건의 재현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 이런 생각은 플라톤이 『향연』에서 언급한 아리스토파네스의 인간의 사랑에 대한 기원을 상기하게 한다. ‘옛날에는 자웅동체의 인간이었으나 이들의 힘이 올림루스 신들을 위협해서 제우스가 인간을 남녀로 갈라놓았다. 둘을 하나로 하는 결합이 인간의 상처받은 본성을 치료한다’는 우화이다. 알레고리이지만 남녀가 왜 때로는 죽음을 불사하면서도 에로스의 결합욕망을 추구하는지 대한 실존적인 은유이다.
오리온이 빛을 내서 지구에 도달하고 이 빛들은 에로스의 화살이 되어 지상에 내려와 김영미 시인을 사랑에 빠지게 한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큰 구도의 이야기가 아름답지만 이 시에는 지상의 사랑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시인의 슬픔도 들어가 있다. 에로스의 화살은 대상과 사랑에 빠지게 하는 금촉과 대상을 증오하게 하는 납촉의 2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양과 음으로 갈라진 에너지의 순환이 있어야 세계와 인간의 순환이 일어난다. 생과 사, 사랑과 죽음 모두 이 순환의 다른 기표이지만 인간은 긴 순환의 한 순간을 선택해서 존재한다. 존재의 불완전과 결핍 때문에 인간은 음의 시간에서 양의 시간을 선망하고, 양의 공간에서 음의 공간에 있는 연인을 욕망한다.
먼지 속의‘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
동질성에서인가? 그득 쌓인 책 위에 먼지가 그득 쌓여 있다 내용에 앞서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제목에 대해 먼지는 며칠 또는 몇 달째 긴 묵상 중에 있다 햇빛보다는 그늘 쪽인 먼지는 컴컴한 구석을 주로 거닌다 십 년을 꿈쩍 않는 가구들의 해묵은 그림자를 걸치고 말하기보다 침묵을 좋아하는 먼지는 TV 브라운관 속이나 스피커 떨림판 속에 소복히 귀를 모으고 있다 靜的이나 급속히 動的으로 팽창하기도 하는 먼지는 이리 저리 떠도는 마음을 따라 무작정 헤매기도 한다 이율배반적이기도 한 먼지는 장식장을 붙들고 있으면서도 장식이기를 거부하고 자유롭기 위해 무한궤도를 꿈꾸면서도 돌아가는 선풍기 날개를 죽어라 부여잡고 있기도 한다 그 먼지는
우주에서 보면 모든 것이 다 티끌인데
꽃도 별도 사람도 다 티끌인데
독자적이고자 하는 그 먼지는 보다 깊고 보다 높은 곳에 저만의 공간을 마련하고 마침내 없음에 이르고자 한다 그러면서도 올이 고운 보송보송한 옷과 향기로운 화장품 뚜껑에 한없이 집착하는 그 먼지는 한 칸짜리 집과 한 평짜리 사무실을 꽉 붙들고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다 그 먼지는
(시「그 먼지는」전문)
김영미 시인은 자신을 먼지에 투사해서 집을 떠나지 못하는 시인의 현실을 풍자했다. 대상을 손이 닿을 수 없는 먼 곳에 있어서 대상과 하나가 되지 못하는 인간의 실존을 보는 일이 비극이라면 대상을 신의 위치에서 내려다보며 대상의 아이러니한 운명을 한눈에 보는 게 희극이다. 시「슈퍼스타 나의 오리온」이 비극형식으로 시인의 승화가 일어난 시라면 시「그 먼지는」희극형식으로 시인의 풍자가 드러난 시다.
“우주에서 보면 모든 것이 다 티끌인데/꽃도 별도 사람도 다 티끌인데”는 깨달음의 인식으로 화자(먼지)는 “보다 깊고 보다 높은 곳에 저만의 공간을 마련하고 마침내 없음에 이르고자”한다. 이런 공空의 깨달음도 그 먼지가 붙들고 있는 “올이 고운 보송보송한 옷과 향기로운 화장품 뚜껑”의 색色의 아름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자신에 대한 조소이다.
현대인은 누구나“한 칸짜리 집과 한 평짜리 사무실”에서 갇혀 산다. 필자는 공색空色이 하나임을 깨달아 사사무애事事无涯의 대자유를 누리고 사는 ‘각자覺者’를 글에서는 보았으나 현실에서는 본적이 없다. 학인學人으로서의 중생은 자신을 '먼지'를 내려다볼 수 있는 시선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시선이 단초가 되어서 인연이 어우러진 후에 화자가 상상한 초월시간에서 ‘먼지’속에 깃든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의 실상實相을 보는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
승화昇華와 치유
개별시편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이 시집의 2부와 4부의 시편들은 김영미시인의 다른 관심이 드러난 시편들이 묶여있다. 2부는 주로 김 시인이 몸담고 있는 사회전반에 대한 관심이 모더니즘의 관점에서 들여다본 시편들이다. 자아에 대한 선동을 말한 「격문」,자본주의 꽃인 “금괴”에 대한 무의식적 선망을 드러낸 「금괴」,상품선전을 위해 인공허수아비가 백화점의 노리개로 춤을 추는 풍경을 그린 「댄스 댄스」,공사장의 인부의 도장작업을 잭슨폴락의 액션페인팅과 대비한 「액션페인팅」이 눈에 들어온다. 정보화 및 금융자본의 문화환경은 시인의 의식과 무의식에 당대의 문화적 압력을 삼투압처럼 행사한다. 시인도 이에 자유로울 수 없고 2부의 시편들은 이런 영향을 반영한다.
4 부는 기표들의 흐름에 의지해 언어의 재미(fun)을 추구한 시편들이 있다. 개념어를 수사하는 ‘적的’을 ‘적賊’으로 풍자한「철학강사 P氏의----적들」, 담배연기의 몽상과 연상에서 만들어지는 여자의 누드와 에로티시즘을 그린 「애연, 담배연기를 위한」,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대비를 통해 화자의 삶에 대한 페이소스를 드러낸 「비전문가」등의 시편이 형상화가 잘 이루어져 주제를 명확하게 한 작품들이다. 언어와 대상을 해체를 의식하는 이런 시편들에서 김 시인의 예술의식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
시편들의 분석을 통해 김영미시인의 다른 시적관심을 독자와 공유하는 기쁨은 지면의 제약으로 다음 기회로 미룬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김영미 시인의 시적진실이 가장 잘 드러난 낭만적인 시작태도의 시편을 이번 해설에서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낭만주의는 인간의 내면에서 세계정신을 드러내려는 태도를 견지한다. 김영미 시인은 인용 시편들에서 닿을 수 없는 대상(진리)에 대한 동경과 좌절을 드러낸다. 연인(진리)을 숭고한 위치에 올려놓고 흠모하고 닮으려는 욕망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태도가 ‘승화’라고 정신분석가들은 말한다. 현대는 금욕에 의한 승화의 기쁨을 얻는 대신 감각의 직접 향유로 욕망을 누리고자 하는 시대이다. 예술도 이런 사조에 흘러가고 있고 감각의 기쁨은 있으나 내면의 목소리는 가려지고 희미해져가고 있다. 과거의 천재시인들은 자신의 심혼에 거주하는 ‘데몬(Demon)’의 목소리를 듣는 자였다. 이 목소리에 귀를 시인들이 점점 없어져 간다.
시와 음악의 신이었던 아폴로는 의술의 신이기도 하다. 그리스 시대에는 예술이란 기술(Techne)이었다. 예술이란 모방에 의해 쾌락을 얻는 기술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심혼을 치료한다는 암시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이 특수와 보편의 매개역할을 하면서 ‘진리’를 드러낸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런지‘진리’라는 원본이 없다고 생각하는 포스트모던 예술은 형식의 쾌락은 있으나 인간의 심혼을 치료하는 기능은 없는 것 같다. 여러 다른 시편들이 있지만 언급한 시들은 김시인이 자신의 심혼이 말하는 소리에 귀 기울인 시라고 생각한다. 김영미 시인의 시가 더 확장되어서 타인의 삶을 치유하는 시, 아트(Art)이자 테크네(Techne)가 되기를 바란다.
【웹진 시인광장 Webzine Poetsplaza SINCE 2006】
김백겸 시인
1953년 대전에서 출생. 충남대학교 경영학과와 경영대학원 졸업. 198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기상예보〉가 당선되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비를 주제로한 서정별곡』, 『가슴에 앉힌 산 하나』, 『북소리』, 『비밀 방』, 『비밀정원』 등과 시론집 『시적 환상과 표현의 불꽃에 갇힌 시와 시인들』(푸른사상, 2010)이 있음. 현재 ‘시힘’,‘화요문학’ 동인이며 웹진 『시인광장』 主幹. 계간 『시와 표현』 主幹. 한국원자력연구원 근무. 대전시인협회상, 충남시인협회상 수상.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 > 우리 말♠문학 자료♠작가 대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미아, "수주 변영로 아내의 항변" (0) | 2011.12.28 |
---|---|
“나무”의 사유와 “풀”의 사유로서의 시들/김백겸 (0) | 2011.12.22 |
문명의 구원을 향한 생태적 사유 / 이성혁|문학평론가 (0) | 2011.11.23 |
신춘문예 당선은 ‘작가 면허증’일 뿐… 10명 중 4명 자기 책 못내 (0) | 2011.11.23 |
'총각무'는 있어도 '처녀무'는 없다 (0) | 2011.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