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당선시의 특성
이은봉 교수
1. 신춘문예 당선시는 어느 해든 1월 1일자 신문에 인쇄되어 독자들에게 배달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정월 초하루가 갖는 밝고 건강한 분위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 뽑히는 것이 보통이다. 어둡고 칙칙한, 절망적이고 퇴폐적인 분위기의 작품을 선보여 정월 초하루부터 독자들의 마음을 괴롭힐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현실의 고통이나 아픔에 뿌리를 두되 씩씩하고 튼실한 희망의 정서를 담아내는 동시에 의지적인 미래 전망을 담아낼 때 심사위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 신춘문예 당선시에 아침이나 새벽의 이미지, 적어도 오전의 이미지가 많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계절적으로도 봄이나 여름의 이미지들이 중심을 형성하고 있다. 때로 겨울이나 밤의 공간이 선택된다고 하더라도 그에 굴복하지 않는 이미지, 즉 햇빛이나 달빛 등 화사하고 신선한 정서를 낳는 이미지들이 뒷받침을 이룰 때 주목을 받는다.
신춘문예는 일종의 문학잔치이다. 마땅히 잔치집의 분위기와 함께 하는 것이 좋다.
2. 신춘시에서는 이미지의 창출능력을 가장 중요시 여긴다. 이미지는 묘사와 비유(직유, 은유, 상징 등)에서 발생한다. 그 중에서도 일단은 묘사 능력을 중요하게 여긴다. 신춘시에서는 묘사로서의 ‘언어그림’이 이루는 완미성을 높은 평가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것이 시를 쓰는 기초능력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비유의 능력 역시 소중히 생각한다. 아직까지는 보지 못했던 엉뚱하고도 낯선 비유를 통해 새롭고도 싱싱한 이미지를 창출해낼 때 심사위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 낯설면서도 참신한 이미지는 그 자체로 우리 시의 재산이다. 작품 중에 이런 이미지가 하나만이라도 들어 있어야 시인으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3. 시적 대상이 완벽한 구도와 공간을 보여줄 때 주목을 받는다. 묘사에 의해서든 비유에 의해서든 이미지들이 발생하면 이는 곧바로 시적 화폭을 형성하기 마련이다. 이 때의 시적 화폭이 구체적인 삶의 공간(풍경) 혹은 자연 공간(풍경)을 이룰 때 관심을 끌 수 있다. 일종의 ‘언어그림’을 보여줄 때 새로운 시인으로서의 창작기량을 믿을 수 있다. 이 때의 시적 공간은 대부분 마을, 동네, 방안, 정원, 옥상, 거리, 숲(농촌 혹은 도시) 등 삶의 구체적인 지점이 선택되기 마련이다.
생생한 자연공간(풍광)을 갖는 동시에 깨어있는 삶의 공간(풍광)을 갖는 시라면 더욱 좋다. 그럴 때 시어를 다루는 신진 시인의 기량을 좀더 확실히 알 수 있다. 따라서 체험에 바탕을 둔 익숙한 경험의 공간을 낯설고도 새롭게 묘사해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또 하나 삶의 체험이 구체적인 이야기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4. 두개 이상의 핵심 이미지들이 상호 대조, 대비되면서 날줄과 씨줄로 교직되어 가는 작품, 조금은 복잡한 상상력을 내포하고 있는 작품이 선호되고 있다. 단순하고 평범한 상상력을 소박하게 진술하고 있는 작품이 아니라 이미지들이 치밀하게 뒤엉켜 있는 작품, 이들 상상력이 복잡하게 표현되어 있는 작품, 냉정한 자기 運算이 있는 작품이 평가의 대상이 된다. 물론 이 때의 복잡함과 치밀함을 어지럽고 부잡스러운 군더더기로, 너스레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 물론 그것들이 이루는 다소간의 추상이나 관념은 충분히 용인이 된다.
5. 有聯詩일 경우에는 최소한 3연 이상의 구조를 갖는 것이 좋다. 그럴 때 시인이 연을 구성하는 능력을 알 수 있다. 有聯詩이든 無聯詩이든 25행 이상(적어도 20행 이상)의 길이는 갖고 있어야 한다. 그간의 예로 보면 25행 이상 35행 이하의 작품이 많이 뽑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정도의 길이가 되지 못하면 특별히 뛰어날 경우 2편을 묶어서 뽑기도 하는데, 그런 예는 별로 많지 않다. 산문시보다는 행이 있는 자유시 형식을 선호한다.
6. 특정 종교의 색채가 너무 많이 드러나는 작품은 아주 뛰어나지 않으면 기피되는 것이 보통이다. 괜스레 종교간의 분쟁이나 쓸데없는 잔소리를 불러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불교적 정서는 예외적일 수도 있다. 한국인의 일상적 의식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종교적 사상은 완전히 육화하고 물질화하여 구체적인 형상 속에 감춰 표현하는 것이 좋다.
7. 서정시는 근본적으로 자기 시대에 대한 비판정신을 바탕으로 한다. 새로운 시대를 향한 고뇌와 전망을 구체적 형상으로 담아내는 것이 좋을 수 있다. 특히 신춘문예 당선시는 전통적으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 > 우리 말♠문학 자료♠작가 대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안의 타자 찾기-조용숙 신작시에 대하여 / 이은봉 (0) | 2012.02.29 |
---|---|
풍경과 존재의 변증법 / 이은봉 (0) | 2012.02.29 |
[재미있는 우리말] 깊이 들지 못하는 노루잠 (0) | 2012.02.22 |
[재미있는 우리말] 나비잠, 쇠잠 (0) | 2012.02.15 |
[우리 말] 7 비 이야기 (0) | 2012.0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