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읽고 -수필

[권순진] 개별 경제학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2. 8. 23.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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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 경제학
 

권순진

 


입맛 당기고 호기심도 당기는 점심특선 웰빙비빔밥
정가가 육천 원이라… 잠시 망설이다
사천 원짜리 그냥 비빔밥으로 낙찰을 본다
 

문자 받고 가야되나 말아도 되나 머리 굴리다가
찾은 고등학교 동창 초상집에
미리 준비해간 부의금 삼만 원
다른 녀석은 대개 오만 원이고 십만 원도 했다는데
잠시 망설이다 돌아서서
슬그머니 이만 원을 더 보탠다
 

이천 원의 내핍과 이만 원의 체면
스스로 쩨쩨해지지 않을 만큼의 경제적 자유
아직도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아
그래서 늘 부자가 부럽기는 부럽다

 

 

 

-시집『낙법』(문학공원,  2011) 

 

 


  부조의 성격은 지연과 혈연관계와 더불어 농어촌 공동체 마을 두레살이에서 서로 돕는 문화에서 출발을 한다고 한다. 없을 때 부족할 때 목돈이 들어갈 때 상부상조의 아름다운 풍습은 우리 민족 공동체 삶의 뿌리로 여겨져 왔다. 그러던 것이 거대한 산업사회로 변화하며 금융이 발달하면서 사금융 같은 계 같은 것들이 축소되고 명맥만 남아 있는데 애경사 또한 품앗이 개념을 넘어 변질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슬슬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미뤄왔던 일 마무리하듯 여기저기서 청첩장이 가을날 낙엽 떨어지듯 하나 둘 날아들기 시작한다. 마당발이 아니라서 활동반경이 몇 미터에 불과한 내게도 몇 통쯤을 갈바람에 떠밀리듯 내 마당에 날아들어 올 것이다. 친인척과 가까운 사람들이야 뭐 의례 품앗이하듯 자연스러운데 이 중엔 참 부자연스런 것들도 있다.


  그리 가깝지도 않고 어찌어찌하여 겨우 안면만 튼 사람이 결속도 없는 모임에서 명함 건네듯 불쑥 건넨다거나 아는 사람을 통해 전달받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싹 무시하고 안 가면 그만이지만 사람살이라는 것이 그렇지만도 않아 마음이 영 불편할 때도 있다. 시의 화자처럼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여지기도 하고 가면 얼마를 넣어야 체면치례를 면하나 궁리도 해야 한다. 부자라고 해서 거저 번 돈이 없으므로 헤프게 쓸 일도 없지만 좀 여유가 더 있다면 체면 구기는 일은 좀 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부조는 늘 부족한 것만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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