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임희구
쌀을 씻어 안치는데 어머니가 안 보인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어머니가 계실 것이다
나는, 김씨! 하고 부른다
사람들이 들으면 저런 싸가지 할 것이다
화장실에서 어머니가
어!
하신다
나는 빤히 알면서
뭐해?
하고 묻는다
어머니가
어, 그냥 앉아 있어 왜?
하신다
나는
그냥 불러봤어
하고는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인다
언제 나올지 모르는 똥을 누려고
지금 변기 위에 앉아 계시는 어머니는
나이가 여든다섯이다
나는 어머니보다 마흔 한 살이 어리다
어려도
어머니와 아들 사인데 사십 년 정도는 친구 아닌가
밥이 끓는다
엄마, 오늘 남대문시장 갈까?
왜?
그냥
엄마가 임마 같다
-시집『소주 한 병이 공짜』(문학의전당, 2011)
'아들과 연인' 이라는 소설을 쓴 D. H. 로렌스의 어머니는 무지하고 폭력적인 남편에게서 얻어내지 못한 사랑을 온통 아들에게로 쏟는다. 뭐든 지나치면은 좋지는 않겠지만 엄마의 아들 대한 사랑은 아버지가 딸에게 느끼는 사랑보다 유별하다고 할 수가 있다. 그 사랑이 지나쳐 현대에 와서는 메이트맘을 넘어 헬리콥터맘으로 변질되기도 하는데 아들은 엄마의 또 다른 연인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 연정이 늙었다고 해서 식을까, 변할까, 달라질까. 시 속 두 연인은 마흔 살 이상 나이 차이가 나지만 '엄마'가 '임마'일 정도로 가깝다. 반말을 하고 농짓거리를 하고 뜻도 없는 대화를 나누지만 그 누구도 이상하게 보거나 아들이 싸가지 없다고 보지도 않는다. 아니 오히려 두 연인의 대화가 부럽고 정겨워 귀가 솔깃해진다. 이성간의 사랑 치고 뒤탈이 없는 사랑이다.
내 연정은 내가 미처 알기도 전에 달의 나라로 갔지만 달의 나라가 아닌 태양의 나라로 갔다한들 그 연정이 식겠는가 변하는가.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 오롯이 보고 싶고 그리운 나의 사랑이여, 연정이여. 그 연정을 대신할 연정은 이 세상 어디에 다시 없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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